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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투우와 플라밍고의 정열의 나라
진화용 기자 기자 / iksanpress@hanmail.net입력 : 2007년 01월 02일(화) 11:57
공유 :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에
스페인에서 3만-1만 5000년전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발견되므로 그 당시부터 인간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고대 로마·게르만족에서부터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침략을 받아 왔으며,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5C중엽에 서고트인들이 이곳에 왕국을 세웠다.
 
이후 15C까지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1442년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과 아라곤의 국왕 페르디난도의 결혼으로 통일국가를 이루게된다.
 
19C에 이르러 나폴레옹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끈질긴 저항운동이 펼쳐졌으나 이후 1936-39년간 스페인 내란이 발생했다. 결과는 프랑코 총통이 이끄는 군부의 승리로 끝나게 돼 1975년 총통 사후까지 독재정치가 계속되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된 위치에 놓이게 된다.
 
현재는 입헌군주국으로 민주주의에 기초를 둔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국회는 2원제이다.
 
전통적인 농업국가로 유럽 중에서 농업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하며, 소맥, 감귤류,포도, 올리브 등이 유명하다. 또한 680㎞에 달하는 대서양의 천혜의 어장으로 원양어업 및 근해 어업이 모두 활발하다.
 
대표적인 공업으로는 기계, 조선, 섬유 등이나 무엇보다도 관광산업이 중요한 소득원이 되고 있다.
 
 
지리
총면적은 50만 4788㎢이며, 한반도의 약2.5배로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인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북동쪽은 피레네 산맥을 사이에 두고 프랑스와 접해 있고 북서쪽은 대서양에, 동쪽으로는 지중해에 둘러싸여 있다.
 
남서부로는 포르투갈과 국경을 이루며, 아프리카 대륙과 접하고 있다.
 
 
기후
특색있는 지형과 해류의 영향으로 다양한 기후를 나타낸다. 북서부의 대서양 연안은 온난한 해양성기후로 비가 많으며, 마드리드를 포함하는 중부 고원지대와 남서부는 대륙성의 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또한 남동부의 지중해 연안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일년내내 온난하다. 스페인 내륙 및 남부의 여름 햇빛과 더위는 너무 강열해서 반드시 모자나 선글라스를 착용하여야 한다.
 
의류는 한국의 계절과 비슷하게 준비하면 된다.
 
 
사회문화인구는 약 3,900만명으로 라틴계 스페인인이 주를 이루며, 원주민인 이베리아인, 로마인, 게르만인, 아랍인 등 다양한 종족의 혼혈이 많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카스티야어)이며, 이외에도 지역적으로 북부에는 갈리시아어, 동부에는 카탈루냐어가 사용되고 있다.
 
플라멩고를 비롯한 많은 민속무용이 발달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아랍풍의 다양한 양식으로 건축술이 발달했고 가우디와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도 배출되었다.
 
 
고원지대에 위치한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마드리드는 400여년간 스페인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유럽의 타국가의 수도 중 가장 높은 고지대인 해발 646m에 자리하고 있는 고원도시이다.
1561년 FelipⅡ가 수도를 Toledo에서 마드리드로 천도한 이래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구시가는 주로 17-18세기에 건설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18세기후반 CarlosⅢ때 많은 건물(프라도 박물관, 왕궁 등) 및 도로(Paseo del Prado) 등을 건설하게 되어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드리드는 유럽 문명과 오리엔트적 요소가 잘 결합되어 있어 그 매력을 더하고 있으며,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미술관, 박물관,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고, 거리에는 옛날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신시가지에 들어서면 현대적인 빌딩거리가 펼쳐지며 교외에는 공장과 고층건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주변으로 팽창해 나가는 대도시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마드리드의 기후는 맑은 날이 많으며, 고원도시인 까닭으로 한서의 차가 극심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여름에는 무척 더우나 공기가 건조하여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겨울에도 바람이 없는 날이면 큰 추위는 느끼지 않는다.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초여름이나 초가을이 가장 적합하다.
 
 
 
다양한 투우의 역사를 볼수 있는 곳 투우박물관
 
투우 박물관은 Las Ventas 투우장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투우에 관한 다양한 것들을 볼수 있는 중요한 박물관이다.
 
이곳은 최근에 리노베이션 하였으며 투우가 남긴 유물중 가장 다양한 것을 가지고 있는 박물관이다.
주로 이곳에는 유명한 투우사의 동상과 초상화, 그들이 입었던 투우복(유명한 투우사들이 입는 투우복은 trajes de luces라고 하며 빛의 수트 라는 뜻이다.) 등이 전시 되어 있다.
 
유명한 18세기의 투우사인 Joaquin de Rodrigo의 초상화는 유명한 고야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작품은 스페인어와 영어로 설명되어 있다.
 
고야 컬렉션,프라도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은 파리의 루부르 박물관,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며, 회화관으로는 세계 최대의 미술관이다.
 
마드리드문화관광의 최고 명소이기도 하다. 비야누에바에 의해 1819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된 미술관으로 소장품은 약 6,000점으로 전시되는 것은 3,000점에 이른다.
12-18C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으며 특히 16,17C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이 중 스페인 작품이 다수를 자치하고 있으며 플랑드르,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의 작품들도 다수 전시되어 있다.
 
1층은 스페인회화, 플랑드르 회화, 이탈리아 회화, 고야의 일부작품, 조각이 전시되어있으며, 2층은 이탈리아 회화, 다수의 조각작품, 다수의 고야작품, 스페인회화가 전시되어 있고, 전시작품의 위치는 수시로 바뀐다.
2층의 고야 전시실에 있는 와 , 그레코와 보슈의 그리스도를 테마로 한 종교화 등은 반드시 감상해야 할 걸작들이다.
 
- 스페인 고전(17세기까지) 초기 무명화가로부터 안달루시아 훌라멩꼬 화가, 왕족의 초상화가 등 16세기 El Greco(1541-1614)
17세기 Diego de Velazquez(1599-1660) - 고야와 18세기(Francisco de Goya)(1746-1828)
스페인의 18세기는 미술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시기였으나 고야의 부상으로 초현실주의 및 인상주의로 이어지는 근대미술이 태동 궁정화가의 여동생과 결혼함으로서 왕실 화가로 1785년 임명됨 왕실내 특별지위를 얻어 활동한 결과, 주요 작품들을 프라도가 소장하게 됨
72세의 늙고, 귀먹고 고독한 고야가 인간의 無用性, 비관적인 면들을 그린 ‘암흑의 그림들’(Black Painting)을 소장 특히 ‘옷입은 마야’, ‘옷벗은 마야’, ‘Carlos Ⅳ세 가족 초상화‘ 및 ’5월 2일 총살형‘이 유명
- 18세기 이후 기타 18세기 낭만주의 작품은 부속건물에 보관 엄청난 수에 이르는 19세기 작품들도 대부분 기타 미술관 등에 분산 보관중
- 외국작품 이태리,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및 영국화가 다수작품 소장
 
 
태양의 문, 푸에르타 델 솔

마드리드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프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은 태양의 문이라는 뜻으로 옛날에는 요새로 쓰였다.
 
스페인의 모든 도로가 이곳을 지나도록 설계되어 있어 10개의 도로가 집중되는 광장이다.
 
20세기 초에 그란비아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쇼핑의 중심지로 유서 깊은 상점들이 많았으며, 가장 스페인 다운 물건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곳을 찾으면 된다.
 
1808년 스페인을 침략한 나폴레옹군과 최초로 대항한 장소였으며,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게릴라전을 펼쳤던 곳이다.
 
 
 
마드리드 번영의 상징 알깔라 문
 
알깔라문(Puerta de Alcala)은 마드리드의 독립광장에 우뚝서 있는 곳으로 이곳은 교통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이곳에서 길을 건더면 한때 왕족에게만 개방했었던 레티로 공원의 입구가 보인다. 알깔라문의 아치는 1778년 까를로스 3세때 만들어진 것이며 이탈리아의 건축가 Francesco Sabatini가 디자인 하였다.
 
현재 이것은 스페인 번영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저녁이 되면 이곳은 도심한복판의 아름다운 야경을 제공하는 곳으로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사진에는 종종 알깔라문의 야경이 등장한다.
 
 
네오 무데하르 양식의 아름다운 투우장 라스 벤따스 투우장

라스 벤따스 투우장(Las Ventas)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투우장으로 약 23,000개의 관중석을 가지고있으며 스페인 사람들의 투우에 대한 열정을 가장 가까이 느낄수 있는 곳이다.
 
세계적인 추세가 점점 투우를 동물학대로 간주하고 주변의 많은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투우시즌이 시작되는 5월이면 어김없이 이곳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이곳은 1930년대에 지어졌으며, 이곳이 생기기 전에는 마요르 광장이나 솔 광장 등에 간이 투우장을 지어놓고 투우를 진행했었다고 한다.
 
이 투우장은 네오 무데하르 양식으로 다양한 색깔의 세라믹 타일 장식과 안달루시아로부터 공수해온 금빛 모래 등을 이용하여 매우 아름다운 건축물을 완성하였다.
보통 투우 경기는 3월부터 10월까지 꾸준히 열리며 산 이시드로 페스티발 기간에는 매일매일 다양한 투우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
 
또한 주변에 쉽게 이용할수 있는 다양한 바가 즐비하다.
 
레티로 공원
 
레티로 공원(Parque del Retiro)은 남쪽에는 울창한 숲, 북쪽에는 우아한 화단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시민공원이다.
 
원래는 16C 펠리페 2세의 동쪽 별궁으로 지어졌다. 왕이 공무를 떠나 휴식을 취하기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143ha에 이르는 넓은 부지위에 조성되었다.
 
왕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연못이 나오는데 이곳의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연못주위에는 알폰소 12세의 기마상이 있으며, 야외 음악당이 있어 겨울을 제외한 일요일 오전에는 야외 음악당에서 시민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한 공간 마드리드 왕궁

일명 동쪽 궁전(Palacio de Oriente)으로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식 왕궁중의 하나로 9세기경 아랍인들이 지배할 당시 요새화된 왕궁을 개조하여 오스트리아왕가의 성으로 사용하였다.
 
1734년 화재로 전소된 곳에 부르봉가 왕가의시조이며 베르사이유궁에서 유년시절 보낸 Felipe Ⅴ세가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하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돌과 화강암으로만 건축, 1764년 완공되었고 1764년 Felipe Ⅴ세 아들인 Carlos Ⅲ세때부터 살기 시작하여 후안 까를로스 현 국왕의 조부인 Alfonso ⅩⅢ세가 왕정의 문을 내린 1931년까지 역대 스페인 국왕들의 공식 거처로 사용되었다.
한면의 길이가 140m에 이르는 장방형의 건축물로서 왕궁안의 방은 크고 작은 것을 합하여 2,800여개에 달하며 19세기식 내부장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왕궁은 초기 안달루시아(플라멩꼬)로부터, 이태리의 르네상스 거장에 이르는 그림과 타펫화들로 되어 있다.
1931년까지 국왕의 거처였으며, 현재는 박물관, 영빈관으로 사용되며 국빈리셉션 등 국왕공식행사를 왕궁에서 거행하고 있다.
 
보안상 관광객들이 마음대로 관람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나 가이드가 동반하는 관람은 가능하다. 특히 특이하게 꾸며져 있는 가스파리니의 방과 145명을 영접할 수 있는 대식당, 약 2,500여개에 달하는 채피스트리가 볼만하다.
 
또한 왕궁 주변에 있는 부속 미술관, 도서관, 무기박물관의 관람도 가능하다.
 
 
마요르 광장
 
스페인의 마요르 광장은 규모면에서나 건축학적인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손꼽히고 있는 광장이다.
 
펠리페 2세가 수도의 중앙에다 이와 같은 광장을 만들라고 명하였으나 실제로 지어진 것은 그의 아들인 펠리페 3세가 재위에 있었던 때에나 가능하였다.
 
그리하여 1620년, 스페인의 다섯 성인을 기리는 시성식 행사를 이 곳에서 치름으로써 마요르 광장은 공식적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17세기부터 19세기 전반까지 이 광장은 각종 공연장, 마녀재판과 사형 집행장, 왕가의 결혼행사장, 투우장 등 다양하고 이채로운 행사의 장으로 이용되었다.
 
이에 광장 주변에 위치한 가옥의 발코니들은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왕가를 비롯한 귀족들이 사용할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마요르 광장은 차량 통제를 실시, 오늘날까지 이 곳은 사람들로 늘 북적이는 활기로운 광장으로서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일요일 오전이면 우표 등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이 서기도 한다.
 
광장의 중앙에는 이탈리안 조각가 Giovanni de Bologna에 의해 세워진 펠리페 3세의 기마상이 위치하고 있다.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na)

마드리드를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누는 기준로인 그란비야 대로의 끝쪽에 위치한 광장으로 1916년, "돈 키호테"를 쓴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광장의 중앙에는 말을 타고 있는 돈키호테와 나귀 위에 올라탄 산초 판사의 상이 세워져 있고 뚸치 자신이 만든 소설의 주인공들을 내려보기라도 하는 듯 그 윗부분에는 세르반테스의 상이 있다
광장 후면으로 보이는 건축물은 1950년대에 Otamendi 형제에 의해 설계된 Edificio Espana와 Torre de Madrid로, 총 27층으로 이루어진 이 곳은 현재 아파트 및 호텔로 이용되고 있다.
 
 
수도보다도 인기있는 스페인의 관광도시, 바르셀로나
 
스페인 제2의 도시인 바르셀로나는 피카소와 천재건축가 가우디를 배출한 도시로 유명하다. 이베리아 반도의 북동부 지중해의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으로 온난한 기후를 나타낸다.
 
시인구는 약 200만명으로 국민 총생산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스페인 최대의 상공업 도시이다.
 
약 10㎞에 걸쳐 아베니다 델라 디아고날 거리가 바르셀로나를 가로지르고 있는데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고딕지구라 불리우는 구시가지와 현대의 빌딩이 들어차 있는 신시가지로 구분되어 진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도 꽤나 부유한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를 느낄수 있으며, 물가도 좀 비싸고, 어느 관광지를 가나 무료 입장은 거의 없다.
 
그러나 도시 곳곳에 산재해있는 다양한 볼거리는 유럽의 그 어느 도시 못지 않다.
 
바르셀로나는 워낙 볼거리가 많은 도시이기 때문에 적절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게 좋고, 적어도 3일 이상은 둘러봐야 이도시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바르셀로나 대사원
 
150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298년에 착공한 후 1448년에 완공되었다. 대사원의 폭은 40m, 길이는 93m, 첨탑의 높이가 70m이며 3개의 출입문을 가지고 있다.
 
정면의 현관은 1408년의 설계도에 의해 500여년만인 1913년에 완성되었다.
 
본당 안의 합창단을 둘러싸고 있는 흰대리석 조각은 바르셀로나의 소호성자인 산타에우랄리아의 생애를 조각한 것이며, 회랑 주위에 있는 방인 Sala Capitular 는 부속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15C의 조각가 바르톨로메 베르메호의 피에타가 유명하며, 예배당마다 유명한 성인들이 모셔져 있다.
오랜 역사만큼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정신적 안식처로 자리하고 있다. 성단 앞 광장에서 간간히 오래된 성당 물품이나 투우사의 옷 등을 파는 골동품 시장이 열리며, 일요일엔 전통춤을 추기도 한다.
 
 
구엘 공원(Parc Guell)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조용한 공원으로 이 공원은 가우디의 재기발랄한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도자기를 잘라 만든 의자가 있는 공원으로 오랜 역사만큼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정신적 안식처로 자리하고 있다.
구엘 공원의 정문은 특이한데 두개의 범상치 않게 생긴 집이 현관 역할을 하고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계단이 나오고 계단 한가운데쯤 관광책자들의 바르셀로나 편에 한번쯤 등장하는 모자이크 도마뱀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올라가는 계단 양편으로 타일로 물결치는 외벽, 분수와 도마뱀 모양의 조각, 돌로 쌓은 기둥과 천정 등 관광객들의 눈은 여기 저기 신기한 건축물들을 따라 쉴새없이 움짐이 게 된다.
 
그만큼 이 넓은 공원은 계단을 따라 한층 한층 올라갈 때마다 즐거운 기발함으로 꽉 차 있다.
벤치의 모자이크, 작은집, 울퉁불퉁한 돌을 이용한 기둥과 벽 등, 색다른 것은 모두 그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주위의 꽃나무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또 다른 공원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공원 안에는 가우디가 디자인한 의자, 벤치, 체스트 등이 전시되어 있는 가우디 미술관(Casa Museu Gaudi)도 있다.
 
 
가우디의 성 가족 교회

성 가족 교회(Sagrada familia)는가난한 신자들의 민간단체인 '산 호세 협회'에 의해 1882년에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1891년부터 안토니오 가우디가 건축에 참가하였다.
 
가우디 사후인 현재에도 계속적으로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미완의 교회이다.
 
현재 완성된 부분은 착공을 시작한지 100년만인 1982년에 완성된 것으로 지하예배당과 그리스도의 탄생을 주제로한 안쪽의 107m 높이의 쌍탑과 양측의 98.4m 높이의 탑이다.
 
앞으로 건설될 부분은 170m 높이의 중앙탑과 그뒤의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140m의 탑이다. 따라서 가우디의 성가족 교회의 완성은 앞으로 100-200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는 4개의 탑과 그리스도의 강탄을 그린 살아있는듯한 조각들이 이색적이다. 건물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그춰을 타고 오르내릴 수 있다.
 
지하 예배당은 현재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교회 건축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가우디의 묘도 이곳에 마련되어 있다. 가우디가 사후 공사진행에 약간의 차질이 빚어졌으나 항상 변화를 추구하는 현대에 무언가 완성을 위한 목표가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지금까지 계속 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축구경기장 - 바로셀로나 축구경기장

바르셀로나의 Camp Nou는 유럽에서 가장 큰 축구경기장으로 이곳은 Barcelona FC 팀의 홈구장이다.
 
이 경기장은 1957년에 Francesc Mitjans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여러번의 확장공사를 통하여 현재는 98,000개의 관중석을 가진 거대한 곳이 되었다.
 
이곳에는 또한 박물관도 가지고 있는데 Barcelona FC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트로피와 팀의 엠블렘으로 만든 다양한 기념품등도 진귀한 볼거리 이다.
이곳은 본격적인 스포츠 컴플렉스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으며 현재 축구장 뿐만 아니라 스포츠 센터와 아이스링크, 미니 스타디움등도 가지고 있다.
축구팬이라면 꼭 한번 반드시 들러봐야할 곳으로, 스페인의 축구열기를 느끼고, 축구를 통한 다양한 마케팅을 배울수 있는 산 교육장이다.
 
 
다양한 재미가 가득한 곳 몬주익(Montjuic)

몬주익 언덕은 고도 213m로 도시 전경을 한눈에 볼수 있으며, 바르셀로나 서부의 상업지구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다양한 아트 갤러리, 박물관, 각종 행사, 장미 정원이 있는 야외 무대가 있어서 관광객들을 오랜 시간동은 즐겁게 해주는 장소중의 하나이다.
지난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로 종합 유원지로 발돋움 하였으며 언덕 위에는 올림픽 주 경기장이 있다. 우리에게는 손기정 선수와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으로 금메달을 딴 곳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밤이 되면 에스파냐 광장의 분수대에서는 다양한 음악과 화려한 조명의 분수쇼를 하는데 거대한 분수가 음악에 맞추어 색깔을 바꿔가며 보여주는 화려함이 최고조를 이룬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놓쳐서는 안될 볼거리 이다.
몬주익 언덕의 곳곳을 둘러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는 투자를 해야 한다. 언덕위까지 걸어가는 것 보다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플라자 에스파냐에서 13번 61번을 타면 몬주익 언덕까지 갈수 있다.) 또는 지하철 Parallel역에서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의 배경이 되는 진정한 스페인, 세비야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5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비야(Sevilla)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내 세비야 주(州)의 주도로,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도시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강(Guadalquivir)의 상류 연안에 자리잡은 이 곳에는 오늘날 70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과거에 이 곳 세비야 항은 스페인과 아메리카 대륙 간 무역거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후 새롭게 생겨난 항구들에 의해 중요도가 과거보다 약화되긴 하였으나 현재까지도 세비야는 이베리아 반도의 항구들 중 대표격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세비야의 옛이름은 히스팔리스(Hispalis)로, 처음 이 곳에 정착한 것은 타르테시안(Tartessian)인들이었다.
 
기원전 207년경, 로마인들이 세비야에 들어오면서 이곳은 이후 7세기까지 로마제국의 서부 지중해 거점도시로 활약하였다. 서기 711년부터 1248년까지 계속된 무어(Moor)의 지배는 세비야를 비롯한 전 안달루시아 지방에 크나큰 흔적을 남겼다.
 
히랄다 탑(La Giralda)은 남아있는 이슬람 유적 중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이다.
17세기는 세비야 예술에 있어 전성기였다. Velazquez, Murillo and Valdes Leal와 같은 화가를 비롯해 조각가인 Martinez Montanes가 이 시기 세비야에서 태어났고,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또한 돈 후앙의 출생지로도 유명한 이 곳은 스페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투우와 플라멩고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20세기에 이르러 세비야에서는 범세계적 규모의 박람회들이 개최되었는데 1929년에 개최된 남미 엑스포를 통해 도시는 크게 번영하게 되었고, 콜롬부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해서 1992년에는 세계 엑스포가 열리기도 하였다.
 
 
 
황금의 탑(Torre del Oro)
 
1221~1222년 사이에 적군함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비야를 흐르는 과달키비르 강어귀에 세운 황금의 탑은 12각형 모양으로 Alcazar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방어벽의 일부분으로 뢸들어졌다.
세비야에 있는 Almohade 시대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로 이 탑의 이름은 한때 돔을 덮었던 황금 타일로 햇빛이 반사된되서 연유되었다.
 
지금은 유명한 스페인 항해자와 선박의 모형과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는 해군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세비야의 가장 큰 탑(Torre de la Giralda)
 
히랄다(Giralda)는 세비야의 가장 높은 건축물로 98m의 높이를 자랑하며 세비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특징이라면 이태리 로마의 돌을 옮겨 기초를 세우고 건축되었다. 이 탑안에는 거대한 르네상스 스타일의 종이 있다.
 
꼭대기에 올라 도시를 바라보면 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도시전경을 볼수있다. 이 탑 내부에는 이 탑을 오르는 사람이 안전하도록 35개의 램프가 있다.
외관은 무어식 구조로 건설하는데만 약 20년이 걸렸고 벽돌을 격자무늬로 쌓아 올림으로써 더욱 견고함이 느껴진다.
 
또한 창문의 모양은 아치형태로 만들어져 있으며 발코니의 추가는 다소 르네상스적이다. 탑의 제일 윗부분은 이 지방의 지배세력이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바뀌면서 변천의 역사를 거쳤다.
 
12세기경 이슬람 세력에 의해 건설된 히랄다는 모스크의 미나렛이었으나, 후에 기독교들에 의해 풍향계가 달린 종탑으로 개조되었다.
 
"Giralda"는 스페인어로 원래 "바람개비, 풍향계"란 뜻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의 세비야 대성당(Catedral)

Magna Hispalensis'라고도 하는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사원에 이어 유럽에서 3번째로 큰 교회이다.
 
Giralda로 알려진 The Almohade Minaret은 르네상스 부흥시기인 1568년에 만들어졌고 대성당은 1401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수세기에 거쳐 완공되었다. 고대 모스크의 유적지에 건축되었으며 5개의 본당 회중석과 25개의 예배당을 갖춘 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성당 내부에는 15세기의 스테인드 글라스, 정교한 15세기의 성가대석, 교회 제단 위쪽에 있는 고딕양식의 장식벽와 같은 예술적인 건축물들로 가득차 있다.
 
분리되어 있는 왕실 예배당에는 Murillo, Zurbaran, Valdes Leal, Goya 등의 작품들이 있으며 유리관안에는 두개골이 전시되어 있어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스페인 전역의 특색이 담겨 있는 곳, 스페인 광장

스페인 광장(에스파냐 광장)은 마리아 루이사 공원에 인접해 있으며, 대성당 동쪽으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세비야의 가장 인상적인 장소이다.
 
이 광장은 반나절을 충분히 보낼수 있는 매우 이상적인 공간이다.오늘날 광장에는 정부청사가 들어가 있으며 작은 강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어서 보트를 빌려 탈 수도 있다.
 
광장은 반원의 형태로 둘려싸여진 거대한 건물이 있으며 아래부분은 여러칸으로 분류되어 스페인 모든 도시의 지도와 특색이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스페인은 워낙 도시도 많고 큰 나라이기 때문에 이것은 반원의 형태로 거대한 에스파냐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지방성이 강한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이곳을 방문하여 자신이 속한 도시앞에서 사진찍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스페인의 무데하르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 알카사르
 
알카사르는 세비야에서는 절대 놓쳐서는 안될 볼거리로 안달루시아 역사와 문화를 볼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안뜰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꽃과 아름다운 좁은길을 가진 역사 지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세비야의 알카사르는 자칫하면 무어인의 궁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왜냐하면 몇몇개의 방과 안뜰은 알함브라와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카사르의 일부분은 무어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Pedro the Cruel of Castile왕은 1360년대에 그의 부인과 이곳에서 살며 통치하였다.
 
그 당시 뻬드로 왕은 알카사르를 재건축하면서 그라나다와 세비야, 코르도바, 발렌시아 등지에서 초기 무어식 건축물을 지었던 노동자들을 고용한것이다.
뻬드로 왕의 작업으로 인해 오늘날의 알카사르의 핵심이 형성되었으며 비록 현재는 화재와 천재지변으로 거대한 복구 작업이 필요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가장 전형적인 무데하르 건축물이다.
 
 
이슬람 교도의 마지막 거점, 그라나다

눈 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 기슭에 위치한 그라나다(Granada)는 711년경부터 스페인을 약 8세기 동안 다스렸던 이슬람 계통의 나사리 왕국의 최후의 거점지였다.
 
1236년 코르도바의 지배권을 그리스도 교도에게 빼앗기자 아라비아 왕 유세프는 그라나다로 도망쳐 와서 나스르 왕조를 세웠다.
 
그 후 1492년 그리스도 교도의 국토회복 운동이 완료될 때까지 250여년 동안 그라나다는 이슬람 교도에 의한 이베리아 반도 지배의 마지막 거점으로 번영했다.
 
시내에는 3개의 언덕이 있다. 사비카 언덕은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곳으로 일명 알함브라 언덕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담홍색의 성벽과 탑이 성벽과 탑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전망 좋은 곳으로 시내와 주변의 경치까지 볼 수 있어 좋다.
 
알바이신 언덕은 이슬람교도들의 마지막 도피처로서 오밀조밀하고 작은 골목길이 인상적이다. 이 언덕 중간에 있는 산 니콜라스 성당 앞은 그라나다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전체적인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끝으로 사크로몬테 언덕은 동굴 속에서 사는 집시들로 유명한 곳이다, 동굴 속을 주점으로 개조하여 관광객을 상대로 강렬한 리듬의 플라멩고를 보여준다.
 
그라나다 관광 길잡이관광에는 최소한 하루가 소요된다. 관광 중심은 역시 구시가지의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알함브라 지구이다.그밖에 옛날 아라비아 인들이 살던 알바이신,집시의 거리, 사크로몬테 (Sacromonte)를 비롯해서 그란비아 데 콜론 (Gran Via de Clolon과 대사원 주변에 있는 사원 및 교회와 유적들도 빼 놓을 수 없다.
 
이 도시는 안내인과 함께 걸어서 관광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오전,오후,밤으로 나누어 관광 투어가 있으므로 이것을 이용할 수도 있다. 관광 투어는 호텔에 부탁하면 예약해 준다.
 
 
 
왕실 예배당(Capilla Real)
 
이곳에는 그라나다의 이슬람 교도들을 몰아냄으로써 스페인 전성기로서의 발판을 다진 페르난도 공과 이사벨 여왕의 묘가 지하에 보존되어 있다.
 
건축양식은 르네상스식과 고딕을 절충한 것으로 주요 볼거리는 왕실 예배당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장식을 한 황금색 울타리가 눈에 띈다. 이것이 왕의 묘소이다.
 
'그리스도의 세례' '부활' 등을 조각한 대리석 좌대에 누워 있는 것이 그들의 딸인 후아나와 남편 펠리페의 묘소이다, 지하실에는 페르난도 왕의 왕자 비겔이 잡들어 있다.
 
사원이 있는 곳은 시내의 중심지로서, 각종 민속 공예품 가게와 레스토랑, 기타 잡화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서 쇼핑하기에도 편리하다.
 
 
알함브라 궁전(La Alhambra)

스페인 최후의 이슬람 왕국인 나사리 왕조의 보아브딜 왕은 스페인 국민의 국토 회복 운동에 굴복하여 평화적으로 이 성을 카톨릭 왕에게 건네주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이 때가 1492년 1월, 바로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이 있던 해이다. 이로써 스페인은 1238년부터 시작된 약 8세기 간의 이슬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근대 스페인의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성"이라는 뜻으로 알함브라 궁전(La Alhambra)의 성벽은 2km이고 길이가 740m, 넓이가 220㎡에 달하고 있다. 나사리 왕조의 번영기였던 14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주로 세 개의 정원, 즉 맞추카의 정원, 코마레스의 정원, 그리고 라이온의 정원을 기본 축으로하여 설계된 정원 형식의 건축물이다. 내부는 왕궁, 카를로스 5세의 궁전, 헤네라리페 정원, 알카사바(성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자의 정원

뜰 중앙에 약 5m의 분수반을 12마리의 사자가 지탱하고 있어 라이온의 정원(뜰), 혹은 사자의 정원(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정원의 둘레는 높이 6m의 회랑이 감싸고 있다. 이곳은 원래 왕궁의 하렘(Harem)으로, 옛날에는 왕 이외에는 여자와 환관밖에 출입하지 못했다.
 
124개의 대리석 기둥이 즐비한 이곳의 2층에서는 왕후와 왕의 여자들이 살았다. 그리고 뜰에 면해 있는 3개의 방 중 남쪽 아벤세라헤스의 방은 8명의 남자들이 참수형을 당했다는 곳이기도 하다.
 
 
카를로스 5세의 궁전(PLACIO DE CARLOS)
 
"카를로스 5세의 궁전"은 회교 건축물에 대항하기 위하여 스페인의 번영기이던 16세기 무렵에 카를로스 5세가 세운 것이다.
 
전체적으로 르네상스 양식을 띄고 있는 이 건축물의 1층은 음향효과가 좋아 매년 여름철,그라나다 음악제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2층은 미술관 겸 박물관으로 각종 귀중한 유품과 회화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카를로스 5세 궁전 내에는 2개의 미술관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1층에 위치한 스페인-이슬람 국립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에는 알함브라 궁전 내에서 발굴한 유물을 비롯해 그라나다 시내의 저택들을 허물면서 발견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유물들 중에는 기둥, 타일, 도자기, 아랍 양식의 저택 천장과 창문 등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관람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높이 1.36m, 원둘레 2.25m에 달하는 14세기 알함브라 항아리이다.
 
또 하나의 미술관은 베야스 미술관으로 이 미술관에는 주로 그라나다파로 불리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고, 스페인 정물화의 대표화가인 산체스 코탄을 비롯하여 화가, 조각가 및 건축가를 겸했던 아론소 카노 등의 작품이 있다.
 
 
오래된 아랍지구 알바이신
 
그라나다 도시 한켠, 알함브라 궁전과 마주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알바이신 지구(The Albaic?n)는 그라나다의 무어리쉬(Moorish) 기원과 매우 밀접한 곳이다.
 
이곳의 성채는 13세기에 처음 지어졌으며 30개 이상의 회교사원이 있다. 도시의 교회의 대부분은 이곳에 만들어 졌으며, 자갈이 깔려진 작은 골목들에는 까르맨을 연상시키는 집시들이 서 있다.
 
무리쉬 장식과 정원, 바깥 세상으로부터 은둔시키는 높은 벽들은 이곳의 특징이다. 해질 무렵이면 산 니콜라스 교회의 전망대(Mirador de San Nicolas)로 나가 저 멀리 알함브라 궁전을 바라보면 석양에 물드는 지붕의 모습이 마법처럼 신비로와 보인다.
 
 
 
사크로몬테, 플라맹고 그리고 집시

영국 사람들은 영국식 모자를 쓰고 타임지를 읽고, 스위스 사람들은 좋은 시계를 만들고 짧은 바지를 입고 산을 오르며 요들송을 부르고, 미국사람은 햄버거를 먹는다면 스페인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전형적으로 떠오르는것은 검정색 머리카락을 가진 열정적인 집시여자가 입에는 빨간 장미를 물고 플라맹고를 추는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스페인과 플라맹코의 관계에 사크로몬테(Sacromonte)는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곳이다. 집시들이 스페인에 처음 도착한것은 약 600년전이며, 그들은 사크로몬테 동굴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아랍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관습은 더욱 독특해 졌으며 집시의 격렬한 성미는 플라맹고라는 춤을 창조하면서 춤을 통해 승화되었다.
현재 일반적으로 편리한 관광객들이 바(bar)나 극장에서 와인을 한두잔 앞에 두고 즐기는 플라맹고는 최고의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진정한 플라맹고는 사크로몬테 동굴에서 즐길 수 있는데 몇년전까지만해도 집시들에게 속거나 위험을 당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일종의 관광 상품으로 개발되어 안전하게 진정한 플라맹고를 즐길 수 있다. 티켓은 호텔 등에서 예약하면 미니버스가 픽업하여 온다.
진화용 기자 기자  iksan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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