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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과 광산김씨 - 정복규 본사사장
익산신문 기자 / iksanpress@hanmail.net입력 : 2010년 05월 24일(월)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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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전 추기경은 1922년 대구시 남산동 225-1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아버지 김영석(요셉)과 어머니 서중화(마르티나)의 5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조부 김보현(요한) 때부터 천주교 신앙을 이어온 집안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신앙이 돈독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박해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천주교 복음을 받아들인 조부는 1868년 무진박해 때 충남 논산군 연산에서 체포돼 서울 포도청으로 압송됐다가 감옥에서 순교했다.

이때 조모인 강말손도 남편과 함께 체포됐으나 임신 중이어서 석방돼 부친 영석을 낳았다. 유복자로 태어난 부친은 성장한 뒤 영남 지방으로 이주해 옹기장사를 하다가 혼인한 뒤에 대구에 정착했다.

그러나 천주교에 대한 일제의 탄압으로 한 장소에서 옹기점을 운영하기 어려웠다. 옹기장이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며 자란 탓인지 김 추기경의 어릴 적 꿈은 장사꾼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 성소(聖召)를 받는 아들이 나오길 기대했던 부모의 깊은 신앙으로 넷째 아들 동환과 막내아들 수환은 사제의 길을 걷게 된다.

군위공립보통학교 1학년 때 부친을 여의었던 김수환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모친의 권유에 따라 세 살 많은 형 동환과 함께 성직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보통학교 5년 과정을 마친 김수환은 1933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에 진학했다. 이후 서울의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에 들어갔다. 이 학교는 일반 상업학교인 갑조(甲組)와 소신학교 과정인 을조(乙組)로 나누어 운영됐다. 그는 전 원주교구장 지학순(1921-1993) 주교, 전 전주교구장 김재덕(1920-1988) 주교 등과 함께 을조에 입학했다.

동성상업학교 시절 김수환은 일제에 대한 울분을 일기장에 적을 정도로 강렬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었다. 졸업반인 5학년 때 '황국신민으로서 소감을 쓰라'는 시험문제를 받고 "황국신민이 아니어서 소감이 없다"고 썼다가 교장 선생에게 불려가 뺨을 맞기까지 했다.

교장 선생은 버릇이 없다며 김수환 학생의 뺨을 때렸지만 훗날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떠날 수 있도록 추천했다. 그 교장선생은 제2공화국 때 국무총리를 지낸 장면(1899-1966) 박사였다.

김수환은 동성상업학교를 졸업한 해인 194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의 상지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던 김수환은 일제의 강압으로 학병에 징집돼 동경 남쪽의 섬 후시마에서 사관후보생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 뒤 김수환은 서울의 성신대학(가톨릭대 신학부)으로 편입한 그는 4년 뒤인 1951년 9월 대구 계산동 주교좌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됐다.

김수환은 1970-1980년대 격동의 시대 속에서 세상과 교회를 모두 돌보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특히 1970년대 가톨릭교회와 명동성당은 박정희 유신정권에 맞서 싸우는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으로 인식됐다.

한편 광산김씨의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의 왕자다. 신라 말 무진주 서일동(현 전남 담양군 평장동)에 은거한다. 그 후 고려 태조가 그를 광산부원군에 봉하고 후손들이 광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김흥광이 서일동에 터를 잡은 후 고려조에 와서 그의 후손들 가운데 8명의 평장사가 배출되자 사람들이 그곳을“평장동”이라 불렀다.

충남 논산군 연산면 고정리는 광산김씨의 집성촌이다. 사계 김장생이 광해군을 피해 은거했던 곳도 바로 이곳이다.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것은 19대 김약채 대부터다.

이 마을의 내력에서 김약채의 큰 며느리 허씨의 이야기를 빼면 안 된다. 김약채의 맏아들 김문이 아들 하나를 낳고 일찍 죽었다. 그 부인 허씨가 17세에 홀로 되자 친정 부모는 딸을 개가시키려 했다.

허씨는 이를 끝내 거절, 아들 김철산을 데리고 시가인 고정리로 내려와 아들을 키우며 수절한다. 이후 김철산은 성종 때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 김겸광 등 4형제를 낳았다. 김국광의 5대손에서 김장생이 태어났으니 오늘의 고정리 마을은 정경부인 허씨의 정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모두 389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2000년 현재 837,008명이 있다.
익산신문 기자  iksan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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