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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규의 성씨 칼럼-이왕용과 우봉이씨
익산신문 기자 / iksanpress@hanmail.net입력 : 2010년 04월 19일(월)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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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이완용(李完用.1858∼1926)의 본관은 우봉(牛峰)이다. 그는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에서 태어났다. 열 살 때부터 판중추부사 이호준의 양자가 되었으며 1870년에 양주조씨 조병익의 딸과 결혼했다.

이완용은 1882년(고종 19) 증광문과에 급제한 뒤 여려 벼슬을 지냈으며 육영공원에서 영어와 신학문을 배웠다. 1887년 박정양을 수행하여 미국에 건너갔다가 귀국한 뒤 부승지·이조참의·전보국회판·외무참의 등을 지내고 1888년 주차미국참찬관·대리공사를 지냈다.

1896년 아관파천 때 이범진과 함께 친러파로서 외부대신에 올라 학부대신·농상공부대신서리를 겸했다. 1901년 궁내부특진관으로 있다가 친일파로 변신했다. 1905년 학부대신이 되어 일본의 을사늑약체결제의를 앞장서 지지, 체결하게 하였다.

그해 12월 의정대신 겸 외부대신서리를 지내고 1907년(순종 1) 의정부참정으로 의정부를 내각으로 고쳤으며,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추천으로 내각총리대신·궁내부대신서리를 겸했다.

헤이그특사사건 뒤 일본의 지시대로 고종에게 양위를 강요, 순종을 즉위하게 하였다. 이에 전국에서 항일의거가 일어났으며, 1909년 이재명의 칼에 맞아 부상당했다.

1910년 8월22일 총리대신으로 정부전권위원이 되어 한·일합병조약을 체결, 일제에게 나라를 넘겨주었다. 그 공으로 일제에 의해 백작이 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고문이 되었다. 3·1운동 때 독립투쟁을 비난하며 경고문을 발표하는 등 매국행위에 앞장섰다.

지난 2004년 8월 이완용이 1900년대 초 전라감찰 시절에 전북 익산시 낭산면 주민들의 임야를 약탈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가 나와 화제가 됐다. 당시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장암마을 이장 이모씨는 "이완용의 손자인 이병길이 현지 관리자로 추정되는 대리인 이병섭을 시켜 땅을 뺏긴 사람으로 추정되는 이석기에게 `땅을 돌려 주겠다'고 약속한 계약서가 있다"며 이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2월4일 작성됐다.

이완용은 이 땅을 나중에 자신의 무덤 터로 쓰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그의 묘는 지난 70년대 후반까지 이곳에 있었다. 그러나 1979년 후손들에 의해 파헤쳐져 지금은 형체도 없다.

한편 우봉이씨(牛峰李氏)의 시조 이공정(李公靖)은 고려 명종 때 시중을 지내고 우봉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우봉을 본관으로 삼았다. 우봉은 황해도 금천군의 옛 이름이다.

2세손인 이자성은 고려시대의 인물로서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의 이승건은 호조참판을 지냈으며, 이지신은 판결사를 거쳐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이상 은 유일(遺逸)로 벼슬에 올라 1661년 자의를 거쳐 정언, 지평, 진선, 집의 등을 역임했고, 숙종 때 형조와 호조의 참의, 대사헌을 지냈다.

이숙은 숙종 때에 우의정을 지냈고, 이익 은 이조판서를 역임했으며 이만성은 병조판서를 지냈다.

이재는 1702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지, 부제학, 한성부 우윤 등을 거쳐 대제학에 이르렀다. 그는 조선후기 성리학계의 대가로서 당시 낙론(洛論)의 대표적 인 학자였다.

이령은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에 들어가 의병으로 활약했다. 충절로서 정문(旌門)이 세워지고, 지평에 추증되었다.

이유겸도 병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뒤 이조참의에 이르렀고, 이채는 1744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호조참판을 역임했다. 이광문은 180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전라도관찰사, 형조, 이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에 이르렀다.

우봉이씨는 학자를 많이 배출했다. 사학계의 태두 이병도 박사, 한시의 대가 이병주 박사, 문학평론가 이어령 교수 등이 모두 우봉이씨 후손이다.

충북 청원군 가덕면 청룡리. 옥천군 이원면 지정리. 개심리, 경북 월성군 안강읍 두류리. 문경군 가은읍 작천리. 문경군 마성면, 경기도 양평군 일원, 황해도 금천군 좌면 고산리가 집성촌이다.

조선시대에 모두 129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2000년에 20,525명이다. 주요파는 ▲부사공파 ▲참판공파 ▲원외랑공파 ▲감찰공파 ▲대사헌공파 ▲종성군파 등이다.
익산신문 기자  iksan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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