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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규의 성씨 칼럼-박중빈과 밀양박씨
익산신문 기자 / iksanpress@hanmail.net입력 : 2010년 04월 12일(월)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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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를 창건한 박중빈(朴重彬,1891∼1943) 교조는 아명(兒名)이 진섭, 호는 소태산(少太山).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원불교에서는 대종사(大宗師)라고 부른다.

전남 영광 출생인 그는 어릴 때부터 영민하고 비범했다. 특히 신의가 있고 탐구적인 소년이었다. 7세 때에 청명한 하늘을 보고 우주·자연현상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인간의 생사와 존재문제에까지 관심을 가졌다.

20대가 될 때까지 구도행각에 정성을 다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5세 때부터는 일체 돈망(頓忘)의 대정(大定)에 들었다가, 26세 되던 1916년 4월 28일 새벽에 대각을 이루었다.

그는 대각의 안목으로 당시의 사회현상과 인류의 장래를 관망했다. 그리고‘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내걸고 물질문명에 끌려가는 인류의 정신구원을 위한 종교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교단창건과 사회개혁의 첫 사업으로 1917년 저축조합운동을 일으켰다. 1918년 저축조합운동에서 확보된 자금을 바탕으로 간척사업을 벌였다. 이 간척사업은 단순한 인력으로 추진됐으며 마침내 1년 후에 3만여 평의 방언공사(防堰工事)에 성공했다.

이 방언공사에서 어느 정도 원불교 창건의 경제적 기초가 확립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초기 교단 창건에 있어서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협동적으로 합력하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정신적 자각을 고취시켰다는 점이다.

낮에는 노동을 하고 저녁에는 종교적인 인격수련을 꾸준하게 하여 정신과 육체가 건전하게 될 수 있는 영육쌍전(靈肉雙全)의 이념을 구현시킨 것이다. 1919년에는 무아봉공(無我奉公)의 대 희생정신을 세우기 위하여 하늘에 맹세하는 특별기도를 했다.

그는 100일간 정성으로 기도를 하고 최후에는 생명희생의 비장한 각오까지 한다. 이 서천(誓天)기도는 당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 철퇴를 가했다. 보다 큰 나, 보다 큰 세계를 찾도록 하는 일대 정신적 자각운동이었다.

이 기도를 마치고 1920년 부안의 변산에 들어가 새로운 시대에 세계 민중을 구원할 교법(敎法)을 제정한다. 1924년 전북 이리시 신용동에 원불교 중앙총부를 세우고 원불교를 세상에 정식으로 공개한다.

1943년 기본경전인‘불교정전(佛敎正典)’을 발행했다. 그해 5월‘생사의 진리’라는 설법을 마치고 6월 1일 열반하였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우주의 원리요, 제불의 심인(心印)인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종지(宗旨)로 한다. 밀양박씨는 신라 54대 경명왕의 아홉 아들 중 첫째인 밀성대군 박언침을 시조로 한다. 경명왕은 그의 아들 9명 중 8명을 계림 8도(신라 전국)에 봉군했다.‘밀박’의 본관인 밀양은 박언침이 봉 받은 고을 이름이다. 밀양은 옛 이름이 밀성 이다. 그래서 밀성박씨 라고도 한다.

8명의 대군들은 분봉 받은 연고를 따라 각각 박씨의 본관으로 삼았다. 밀양박씨, 고령박씨, 함양박씨, 죽산박씨, 상주박씨, 전주박씨, 순천박씨, 경주박씨는 모두 경명왕의 후손인 셈이다.

밀양박씨는 ▲영암박씨 ▲태안박씨 ▲진원박씨 ▲운성박씨 ▲진주박씨 ▲구산박씨 ▲나주박씨 ▲창원박씨 ▲문의박씨 ▲여주박씨 등으로 나눠진다. 밀양박씨는 조선시대에 1,636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257명, 무과 452명, 사마시 759명, 역과 75명이다. 밀양박씨의 인구는 2000년 현재 3,031,478명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박씨는 박혁거세를 유일 시조로 받든다. 신라가 형성되기 전에 부족사회인 사로육촌이 있었다. 촌장들이 어느 날 알천(경주지방의 하천)에 모여 제사를 올리는 데 갑자기 숲 사이에서 말 한 마리가 울었다.

가보니 알 같기도 하고 박 같기도 한 태가 있어 깨보았더니 사내아기가 나왔다. 그래서 성을‘박(朴)’이라고 하고 빛나게 누리에 선다 해서 이름을‘혁거세(赫居世)’라 했다. 나이 13세 되던 해 육촌 사람들이 왕으로 추대하니 바로 신라의 시조 왕이다.

이후 신라 56대‘천년왕조’는 박씨와 석씨, 김씨 등 3성에 의해 계승된다. 박씨는 시조 왕 박혁거세를 시작으로 2대, 3대, 5대, 6대, 7대, 8대, 53대, 54대, 55대 등 모두 열 명이다.
익산신문 기자  iksan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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