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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교와 강화최씨 - 정복규 본사사장
익산신문 기자 / iksanpress@hanmail.net입력 : 2010년 03월 29일(월)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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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교와 강화최씨
법조인 최대교(崔大敎,1901∼1992)는 전북 익산시 삼기면 출생이며 본관은 강화(江華)다. 그는 청렴강직의 표상으로 남아있는 신화 같은 존재다. 그는 익산공립보통에 다녔다. 이 학교는 현재 익산시 금마초등학교다. 그 뒤 동경 법정대학을 졸업하고 고등문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최대교는 18년의 검찰생활 동안 사표를 세 번 던졌다. 엄정한 검찰권과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1949년 초대 서울지검 검사장 시절이다. 당시 정인보 감찰위원장으로 부터 한 장의 고발장이 날아들었다.
현직 임영신 상공부장관이 1948년 12월 경북 안동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상공부 직할 적산 메리야스 공장 관리인으로 부터 2백70만환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그는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을 통해 수사중단 압력을 했다. 현직 장관이 뇌물을 받았다고 하면 미국이 원조를 끊을 것이니 국가의 장래를 위해 수사를 중단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 검사장은 현직 장관을 불러 직접 10시간 넘게 조사한 뒤 배임 및 배임교사, 수뢰 등 혐의로 기소해 버렸다. 한편 법원은 특별재판부를 구성, 임 피고인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최 검사장은 깨끗이 사표를 던졌다.
같은 해 6월에 발생한 김구 선생 암살사건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이 사건을 김구 선생이 당수로 있던 한독당의 내분으로 몰아갔다. 경무대는 한독당원 7명에 대한 영장신청을 검사장을 제쳐 놓고 검찰총장이 서울지방법원장에게 직접 하도록 했다.
최 검사장의 성품을 아는 대통령이 그에게는 일체 알리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이를 전해들은 최 검사장은 사표를 써들고 검찰총장을 찾아갔다
이처럼 청렴하다 보니 그의 생활은 고달팠다. 전근을 많이 다녀 2남4녀의 자녀를 낳은 곳이 각기 다를 정도였고 40년 넘게 28평짜리 낡은 한옥에서 살아야 했다.
정부수립 후 검사장 봉급은 1만7천환 이었다. 그것으로는 쌀 한가마도 사기 힘들었다. 그래서 부인 최기효 여사 등 가족들은 봉투를 만들어 내다 팔았다. 중학교에 다니던 아들 종백씨는 수업료를 제때 내지 못해 집으로 쫓겨 오기도 했다.
최 검사장은 이 무렵 도시락 대신 누룽지를 갖고 출근, 사무실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남모르게 먹었다. 어느 날 직원과 기자들에게 이 장면을 들켜‘누룽지 검사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강화최씨의 시조 최익후(崔益厚)는 경주최씨 시조 최치원의 후손이다. 고려 중엽에 정당문학을 지내고 강화에 살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강화를 본관으로 삼았다. 2세 최효장은 고려 때 도평리를 지냈으며, 3세 최중의 는 시중을 지냈다. 최중의 의 동생 최광의 는 지도성사를 역임했다.
최광의 의 아들 최근 은 1232년(고종 19) 상장군으로 이통의 난을 진압했다. 그 뒤 수문각 대제학을 거쳐 문하시중과 평장사를 역임했다. 그의 아들 최종수는 보문각 대제학을 거쳐 상서우복야를 지냈다. 손자 최유 는 선부전서(選部典書), 수문각 대제학, 보문각 대제학, 예부상서 등을 역임했다. 최수진은 감찰어사, 직제학을 지냈다.
최수진의 아들 최항 은 감찰어사, 최항의 아들 최유간은 개성소윤을 지냈다. 고려조에서 공조전서를 지낸 최용소는 조선 태조 때 회례사(回禮使)로 일본에 건너가 포로로 잡혀간 본국인 570명을 데리고 왔다. 도총관을 거쳐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최용소의 동생 최귀수는 사복경을 지냈으나 조선이 개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 중종 때 예조판서 최한문은 최귀수의 증손이다. 그의 아우 최자윤은 기묘사화 때 남곤 등의 비행을 논하고 양주 사천으로 퇴거하여 살았다. 최귀수의 현손 최수 는 부제학, 호조판서, 개성유수, 판윤을 지냈다.
집성촌은 전북 익산시 삼기면 간촌리. 서두리, 강원도 고성군 고성읍 감월리 등이다. 주요파는 ▲제정공파…부장공파. 전력공파. 부정공파. 강화파. 군수공파. 집의공로파 ▲사복경공파…판서공파. 부사공파. 평택공파. 장사랑공파 ▲우윤공파 ▲지합주사공파 등이다. 과거 급제자는 54명이다. 2000년 현재 14,557명이다.
( 성씨 전문기자 )
익산신문 기자  iksan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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