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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덕과 진주하씨 - 정복규 본사사장
익산신문 기자 / iksanpress@hanmail.net입력 : 2010년 03월 22일(월)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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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덕(河敬德.1897∼1951)은 전북 익산시 춘포면 출생이다.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안당(晏堂)이며, 광복 전후에 교육자, 독립운동가,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1913년 전주신흥학교를 거쳐 1915년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논문 '사회의 법칙'으로 최초의 한국인 사회학 박사가 되었다.
1931년 연희전문대학 사회학 교수가 되었던 하경덕은 흥사단에 가입하여 후진양성과 독립운동에 힘썼다. 그가 언론계에 투신한 것은‘코리아 타임즈 The Korea Times’사장이 시초다. 1945년 9월“영어매체를 통해 국제 고아로 버림받았던 나라를 세계무대에 진출시키고 자주독립을 성취한다.”는 취지로 코리아타임스를 창간한 것이다.
같은 해 1945년 11월 아놀드 군정장관은 재산 조사를 이유로 매일신보에 대하여 정간 명령을 내린다. 그 뒤 하경덕은 매일신보의 재산관리인으로 임명되면서 서울신문 창간에 나선다. 먼저 매일신보의 제호를 서울신문으로 바꾸고 자신은 부사장에 앉았다. 그러나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던 독립운동가 오세창이 20일 만에 물러나자 바로 뒤이어 2대 사장에 취임했다.
하경덕은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의 변신을 꾀했다. 좌우대립의 해방정국에서 중립지 성격을 고수한 것이다. 그러나 1948년 8월 건국 후에는 이승만 정부에 비판적 자세를 취했다. 결국 이런 이유 때문에 1949년 5월 서울신문은 정간을 맞게 된다.
서울신문 정간의 직접적 계기는‘미국은 한· 미 방위동맹 의사가 희박하다.’는 내용의 5월 4일자 1면 톱기사였다. 당시 공보처는 1949년 5월 3일 서울신문에 대해 정간명령을 내린 후에도 하경덕을 비롯한 서울신문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하경덕은 서울신문 정간의 부당성을 알리는 건의서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에 맞서서 끝까지 싸울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6월 14일 서울신문 사장을 사임하고 말았다.
하경덕은 1949년 서울신문사 사장을 그만둘 때 좌익 누명을 쓰기도 했다. 서울신문 정간 뒤 자택에 칩거면서 불안한 정국을 지켜보다 6.25전쟁을 맞는다.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숨어 있다가 붙들린 그는 인민군이 후퇴할 무렵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다.
당시 북한의 끈질긴 회유에 불응하다가 서울이 수복되는 와중에 형무소에서 가까스로 탈옥한 그는 서울 근교의 산 속을 3일간 굶으며 헤매다 간신히 돌아왔으나 그 때 심각한 병을 얻었다. 9·28 수복 직후 병은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 뒤 일본주재 연합군 총사령부에서 근무하면서 치료를 받다가 결국 그곳에서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30일 피난 수도 부산에서 있었다.
한편 진주하씨(晋州河氏)는 시조를 달리하는 3개 파가 있다. ▲첫째 고려 목종 때 중랑장으로 있으면서 거란과의 분쟁에서 항절사로 목숨을 바친 하공진(河拱辰)을 시조로 하는 시랑공파 ▲둘째 고려 정종과 문종 때의 하진(河珍)을 시조로 하는 사직공파 ▲셋째 하진보다 조금 후대의 하성(河成)을 시조로 하는 동정공파가 있다.
하집 은 충목왕 3년 정치관(整治官)으로 있을 때 원조(元朝) 기황후의 친척 기삼만의 횡포를 응징, 극형에 처할 만큼 기개가 높았다. 그의 아들 하윤원은 홍건적의 토벌에 공이 컸으며 대사헌으로 있을 때는 정사(政事)를 엄정히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큰 아들 하유종은 가정대부 봉산군에 봉해졌고, 둘째 아들 하자종은 고려조에서 병조판서를 지냈다.
단계공파(丹溪公派)는 고려 때 주부를 지낸 하성(河成)을 시조로 한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단계(丹溪) 하위지의 집안이다. 흔히 단계하씨로 알려져 있으며 하담 은 하위지의 부친이다.
하씨는 2000년 현재 ▲강릉하씨 2,908명 ▲강화하씨 913명 ▲경주하씨 2,351명 ▲단계하씨 332명 ▲대전하씨 463명 ▲밀양하씨 1,516명 ▲안음하씨 171명 ▲전주하씨 3,875명 ▲진양하씨 71,815명 ▲진주하씨 121,054명 ▲창녕하씨 1,661명 ▲청주하씨 701명 ▲하동하씨 1,782명 등 16개의 본관에 209,756명이 있다.
( 본사 사장 )
익산신문 기자  iksan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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