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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억과 함열남궁씨- 정복규 본사사장
익산신문 기자 / iksanpress@hanmail.net입력 : 2010년 02월 17일(수)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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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억과 함열남궁씨
남궁억(南宮檍.1863∼1939)의 본관은 함열(咸悅)이다. 독립운동가, 교육자, 언론인으로 유명한 그는 1884년 영어학교인 동문학(同文學)을 수료하고 어전통역관이 되어 관리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갑오경장 내각에서 토목국장으로 재직할 때 좁고 꾸불꾸불한 서울 종로거리와 정동거리를 똑바로 뚫고 시내에 탑동공원을 조성했다.
남궁억은 민영환이 세운 흥화학교에 강사로 나가 학생들에게 개화사상과 애국정신을 가르쳤다.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개혁운동에도 참여했다. 독립협회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언론계에 투신한다.
그 뒤 1902년 일본이 러시아와 한반도 분할 안을 토의하는 것을 폭로하여 일제의 침략 야욕을 백일하에 폭로했다. 이 때 남궁억은 심한 고문을 받아 병약한 몸이 되었고 황성신문 사장직을 사임한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남궁억은 여성교육의 일선에 나섰다. 여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남궁억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벌써 50대 나이에 접어들고 있었으나 무궁화를 통한 애국심의 함양과 여권의 신장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때문에 그는 교단을 떠나야 했고 정든 서울을 떠나 선향인 강원도 홍천으로 간다.
그는 모곡리 고향 마을에 교회를 짓고 주일학교를 개선하였다. 새 교사를 짓고 초등학교 인가를 받은 것은 그의 나이 60이 되던 해였다. 남궁억 교장은 학교 뒤뜰에 무궁화 밭을 일구어 7만 그루나 되는 무궁화 묘목을 길러서 몰래 나누어주기 시작하였다. 그는 또 무궁화 노래를 지어 널리 퍼트리면서 민족정신을 일깨웠다. 그러나 남궁억은 1933년 무궁화 사건으로 일본경찰의 고문을 받고 병이 든다. 그 여독으로 1939년 7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우리의 웃음은 따뜻한 봄바람 / 봄바람 만난 무궁화 동산 우리의 눈알이 떨어질 때마다 / 또다시 살아나는 이천만 빛나거라 삼천리 무궁화 동산 / 잘 살아라 이천만의 고려족 백화가 만발한 무궁화 동산에 / 비밀리 노래하는 동무야 백천만 화초가 웃는 것같이 / 즐거워하자 우리 이천만..”
그가 지은 '무궁화 동산' 은 어린이들까지 어깨동무를 하며 불렀다.
남궁억은 함열남궁씨(咸悅南宮氏)의 후손이다. 함열은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의 지명이다. 시조는 고려 성종 때 대장군에 오른 남궁원청(南宮元淸)이다. 본래 함열 출신인 그는 송나라에 유학하여 국자감에서 공부하고 대과에 급제했다.
귀국 후 991년 대장군이 되어 여진족을 백두산 북방까지 몰아내는 등 공을 세워 감물아백(甘勿阿伯)에 봉해졌다. 감물아현은 함열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함열을 본관으로 삼았다. 1세조는 후손 남궁득희 다. 남궁득희 의 아들 남궁신 은 고려 때 조적 의 난을 평정하여 벽상일등공신에 올랐다.
남궁찬 은 군수 남궁치 의 손자로 가문을 중흥시킨 인물이다. 1489년(성종 20) 문과에 급제한 그는 한림원의 여러 벼슬을 거쳐 부제학에 올랐으며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연산군의 난정을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
그 후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김종직 등의 억울함을 상소로 올렸다가 용안에 유배되어 죽었다. 당시 그의 문명(文名)이 중국에까지 알려지자 명나라에서는 그의 묘소에 세워질 인문석(人文石-묘소에 세운 문관 형태의 석물)을 하사했다. 그런데 배로 옮기는 도중 태풍을 만나 바다 속에 잠겨 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신통하게도 인문석이 서해안 바닷가에 떠올라 전북 익산시 성당면 갈산리에 있는 그의 무덤 앞에 세워졌다. 남궁찬의 아들 남궁필(현감), 남궁익(현령), 남궁숙(지중추부사), 남궁열(습독) 등 4형제가 모두 가문의 융성을 이루었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 태종이 조선 인조의 항복을 받고 자기의 공덕을 자랑하는 비를 남궁제 의 고향인 삼전도(지금의 서울 강동구 송파동)에 세웠다. 남궁제 는 그 곳이 더럽다고 하여 30만평이나 되는 토지를 버리고 문서까지 불태운 후 깊은 산골로 들어가 여생을 마쳤다. 천재시인 남궁벽도 후손이다. 인구는 2000년 현재 18,703명이다. 집성촌은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 동면 월운리, 전북 익산시 성당면 갈산리, 충남 공주시 장기면 등이다.
( 정복규 익산신문 사장 )
익산신문 기자  iksan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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