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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에 매 놓은 뒤 눈빛으로 아이들 지도"
소석호 익산영등초등 교장
가정환경 영향으로 교단 입문
중학부터 과외로 경험다져
익산신문 기자 / ikpress@naver.com 입력 : 2010년 06월 28일(월)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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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익산신문 | |
40년 넘게 교단을 지켜온 소석호 영등초등 교장(62). 제도권 경력이야 42년이라지만 중고교시절 이미 가정교사를 했으니 실상 가르치는 업은 50년 넘게 해온 셈이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부친을 비롯 외삼촌, 외사촌 형님?누나 모두 교직에 있었고, '부모말이 문서'라고 모친의 격려도 한 몫했다. 환경 탓으로 교직에 들어섰으니 후회할 법도 하련만 소 교장은 천직으로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런 그가 8월말이면 정년을 맞는다. 정든 교정을 떠나는 일이 쉽지 않은 그는 요즘 학교는 물론 교직원들과의 정 떼기에 나섰다. 그야말로 사회로 돌아가는 이유기를 맞은 것이다. 지난 22일 소 교장을 만나 교단을 떠나는 소감과 생생한 교육계 현실을 들어봤다.
-교직생활을 정리해주신다면.
"68년 입문했으니 어느새 42년이 흘렀다. 눈 깜짝할 새 지난 것 같다. 교직은 정말로 좋은 직업이다. 남의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보수를 따지고 그럴 일이 결코 아니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일, 그게 행복하다. 대학교수든 유치원 교사든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꾸밈이 없잖은가. 사업했다면 아마 빵점 경영인이 됐을 것이다. 남 말을 다 믿어버리는 사람이라 경영자체가 안됐을 테니까…."
-교직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어려서 꿈이 교사였다. 달리 그런 게 아니고 부친과 외삼촌, 외사촌 형님?누나가 모두 교사였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교사였으니 거부할 수 없는 천명같은 것 아닌가(웃음). '부모 말이 문서'라고, 모친께서 너는 선생하면 안성맞춤이라고 격려해주셨다. 그런 연유인지 가르치고 싶어 중학생 때부터 가정교사를 했다. 집안을 돕겠다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 좋아서였다."
-교사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있었다면.
"예전에는 사친회비를 비롯 기성회비 육성회비 학교발전기금 등 학부모에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잦았다. 아이들에게 돈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난처했다. 아이들은 돌아오는 장날을 꼽곤 했고, 장날이 지나도 약속 안지키는 부모가 허다했다. 자연스레 아이들이 학교를 싫어했고, 이런 분위기 때문에 교직을 떠나려고 고민한 적도 있다."
-요즘은 많이 변한 풍경 아닌가.
"맞다. 요즘은 학교에서 돈 걷는 풍토가 없다. 왜 최근에는 무상급식까지 해결하겠다고 지자체장들이 너나없이 나서지 않는가. 정말 바람직한 현상중 하나다."
-체벌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무조건 반대다. 매가 아니어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 교사가 나름대로 노하우를 터득하면 된다. 27살 무렵 모 선배로부터 교훈을 얻은 뒤엔 한 번도 매를 대본 적이 없다. 대신 눈동자를 맞추는 것으로 아이들을 제압했다. 교사들이 좀더 깊이 생각하면 아이들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음은 물론이다."
-어떤 선배였나.
"정읍 용곽초등에서 근무할 때인데 당시 한복수 교장은 굉장히 소탈한 분이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한쪽다리가 부러진 안경테를 고무줄로 엮어서 쓰고 다니셨던 모습이다. 어느날 교정을 한 바퀴 돌고 오시더니 매를 한묶음 들고 오셨다. 매를 대지 않고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그 말을 듣고 매 없이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때 바로 매를 놓았고 가르쳐보니 되더라."
-눈동자만으로 가능했다는 게 이해가 좀 안된다.
"물론이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15분을 넘기기 어렵다. 그때부터 얘기꾼이 됐다. 때가 됐다 싶으면 얘기를 꺼내 분위기를 환기시켰고, 다시 수업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기도 했다."
-홈페이지에 있는 '교장선생님 동화방'은 그 연장선상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언젠가 수업중에 첫눈이 쏟아졌다. 난롯불이 꺼지려는데 눈도 오자 아이들은 이내 소란스러워졌다. 아이들에게 '눈이 뭐같으냐'고 물었더니 '나비떼'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 '나비떼가 너희들에게 놀자고 왔으니 손님맞이하러 나가자'고 했다. 그렇다고 노는 것으로 끝낼 수는 없잖은가. 운동장에서 자신의 꿈을 눈사람으로 만들어보라고 하고 그걸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면서 교육효과를 꾀했다. 그걸 모토로 동화를 썼고, 그 코너도 만들게 됐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제대하고 정읍 용곽초등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아이들에게 핸드볼을 가르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밖에 못하는데, 정말 암담했다. 그래 당시 핸드볼 명문인 정읍여중?고부중을 기차로 버스로 쫓아다니며 배워다 가르쳤다. 잘 모르니까 처음엔 달리기만 시켰고, 나중엔 패스만 천 번씩…. 하지만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그게 통했던 모양이다. 얼마후 정읍군 체육대회 우승에 이어 도 대회까지 석권했다. 현재도 코치로 활동하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다."
-모교에서의 활약도 남다르다고 들었다.
"모교인 흥왕초등에선 새마을부장을 맡았다. 모교니까 애정이 남다르더라. 그래 학교에서 사방팔방 코스모스길을 냈고, 운동회때면 학부모들이 꽃길을 걸어서 왔다. 이 무렵 새학교 가꾸기사업 일환으로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현 교육실태를 진단해달라.
"다양성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한쪽 길로만 몰아가니까 낙오자가 생긴다. 소질을 찾아주면 되는데 일류고 보내서 일류대학만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전국민이 똘똘 뭉쳐있다.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다. 모두 9급공무원을 만들거냐. 특성화교육을 시킬 수 있도록 특성화고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명문학교도 선택권을 폭넓게 하는 다양성으로 봐야 한다."
-초등교육은 특히 중요할 것 같은데.
"맞다. 아이들한테 꿈을 심어주는 시기로 매보다는 칭찬이 필요하다. 친구가, 말하자면 멘토가 돼줘야 한다. 선생님 마인드만 갖고는 가르칠 수 없다. 눈높이를 낮춰 동일시 전략으로 접근해야 아이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어렸을 때 꿈은.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시라. 아마 어제 꿈이 내일이면 바뀌는 것을 체험할 것이다. 역시 흰 제복과 모자가 멋있어서 마도로스를 꿈꾸기도 했고, 깃발을 휘두르는 게 좋아보여 열차 차장이 되고 싶기도 했다. 전쟁 후니까 장군이 되는 꿈도 꿨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쯤 교사로 정했던 것 같다."
/글=김영애?사진=김봉래 기자
<소석호 교장은 누구인가>
그는 초등학교 시절 너무 내성적이어서 여학생들과 친했다고 털어놓았다. 반장 역시 여학생들의 후원으로 됐을 정도. 그런 성격은 오래도록 이어져 군대가서도 신참들 구타한번 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자율성을 최고의 교육 덕목으로 꼽는 그는 매일 아침 아이들을 맞이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왕이면 학교가 즐겁게 공부하고 노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활짝 웃는 표정도 잊지 않는다. 출장 가는 날 조차 아이들 등교 챙기는 일은 어김이 없다.
그 뿐인가. 그는 시인과 아동문학가로도 왕성하게 활동중이다. 익산문협지부장을 비롯 익산아동문학회 회장, 전북문협 부회장, 전북아동문학회 부회장으로 여러차례 감투도 썼음은 물론이다.
이제야 진실로 아이들을 떠나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오게 된 소 교장. 교단 못잖은 열정으로 이어질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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