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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 사회인식은 개선... 행정서비스는 요원 - 박창익 익산장애우교통봉사대 회장
익산신문 기자 / ikpress@naver.com 입력 : 2010년 04월 26일(월)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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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은 30회 세계 장애인의 날. 이날 익산에서도 7개 장애인단체가 모여 장애우들의 용기를 주는 행사를 치렀다. 이를 지휘한 이는 박창익 장애우환경교통봉사대 회장(55). 올해는 예년과 달리 천안함 장병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행사를 축소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장애우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으나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며 "장애우의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9일 박 회장을 만나 그가 사는 방법을 들어봤다. <관련기사 12면>
-장애우의 날 행사의 의미는.
"무엇보다 세계인이 이날을 동시에 기억한다는 의미가 가장 클 것이다. 이날 하루만이라도 장애인들이 편안했으면 하는 바람도 담고 있다. 올해는 천안함 침몰장병들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다소 축소해 치른다."
-익산의 장애우 현황은 어떤가.
"익산의 장애우는 2만여명에 이른다. 이를 전북의 10만1800명에 비한다면 6분의 1가량이 익산에 살고 있는 셈이다."
-적지 않은 인구다. 장애우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옛날에는 장애우들이 힘들어해도 못 본 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도와주는 사람들이 적잖다. 장애우 역시 주변인들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가 잦아졌다. 사회적 인식이 달라진 것 같아 다행으로 생각한다."
-장애우들이 활동하기는 어떤가.
"말로는 배려한다고 하는데 실상은 많이 다르다. 일예료 휠체어를 타고 보면 보행권이 보장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전동차를 타고 도로로 다닐 수밖에 없다. 전동차 이용교육에 앞서 이들의 이동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 파헤쳐진 인도도 서둘러 복구해 장애우 뿐만 아니라 정상인들도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다."
-어떤 시설이 가장 문제가 있다고 보는가.
"무엇보다 시각장애우와 지체?척추장애우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시각장애우들을 위해 인도에 설치해놓은 점자유도블록은 대부분 파손돼 무용지물이다. 지체장애우들도 버스는 물론 택시타기도 쉽지 않다. 저상버스가 있다 하나 이마저 활용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장애우환경교통봉사대는 어떤 단체인가.
"장애우들의 보행권이나 이동권을 위해 봉사하는 단체라고 보면 된다. 일예로 아침마다 신호등 없는 곳을 찾아 교통정리를 하고 있고,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이 요청하면 원하는 곳까지 모셔다드리기도 한다. 나아가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공원이나 하천을 찾아 정화활동도 실시하고 있다."
-장애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92년 무렵이다. 무면허 차를 타고가다 교통사고가 났다. 원광대병원에서 꼬박 3년간 누워있어야 했다. 수술만도 20번에 장파열로 장을 20㎝나 잘라내고, 뼈도 이식했을 만큼 심각했다. 쉽게 말하자면 죽었다 살아난 것이다. 침대를 벗어나면서 전주 단체인 곰두리봉사대에 가입하고 봉사를 시작했다. 이후 3년만에 장애우교통봉사대를 설립하고 회원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성과라면.
"장애우들의 이동권이 보장돼 있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봉고차에 리프트를 다는 일부터 시작했다. 지체 장애우는 물론이고 노약자 임산부도 무료로 도와줬다. 시장에도 모셔다드리고…."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
"150여명의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부족한 점이 많다. 후원자들의 많은 관심을 기다린다."
-보람이라면.
"봉사는 타고 나야 한다고 본다. 장애우 도와주는 게 큰 보람이었다. 또 늘 더 잘해주고 싶고, 항상 그 마음으로 산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할 것이다. 정말이지 제 경우 타고 난 것 같다. 앞으로 바람이라면 시설을 설립해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에피소드를 소개해달라.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비를 맞으며 한 여학생이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사연을 물어보니 하교 길에 그저 할머니가 가여워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학생과 할머니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학생의 신분을 확인해 표창장을 준 적이 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학교도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봉사는 행복을 전쓆하는 힘이 있는 것을 실감했다."
-봉사는 쉽지 않다. 특히 생계가 가장 문제 아닌가.
"맞다. 아내가 보험 일로 꾸려가고 있어 미안할 때가 많다. 처음엔 싸움도 많이 했으나 이젠 최고의 후원자가 됐다. 격려도 해주고 상부상조하다보니 기쁨이 배가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꿈은.
"봉사를 하기 위해 태어났나 보다. 어려서부터 지나가는 사람도 벌로 보지 않았다. 늘 돕기 위해 애썼던 기억이 오롯하다. 남을 도와주고나면 또한 무척 기뻤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봉사는 나눔이다. 누구나 있어서 나누는 것은 아니다. 부족하지만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조금씩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도 풍성해지는 삶을 확인하게 된다. 이게 바로 봉사의 매력이고 동력이다."
/글=김영애 기자?사진=김봉래 기자
<취재를 마치며>
전주에서 태어난 박창익 회장은 1975년 부모님이 이사오면서 익산에 정착하게 된다. 그는 어려서부터 유독 남 돕기를 좋아했다. 마치 남을 돕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다고도 한다. 그런 그가 장애우들의 이동권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고, 또 청소년들의 범죄예방을 위해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청소년범죄예방지도자협의회 익산지부장은 그런 애정에서 비롯된 감투였다.
박 회장의 일상은 봉사에서 시작돼 봉사로 마무리된다. 오전 7시면 학교주변을 둘러보면서 청소년들의 범죄를 방지하고, 9시쯤 출근하면 이제 장애우들의 일상을 위해 한 몸을 바치는 시간이다. 그 뿐인가. 밤 9시부터 12시까지는 우범지역을 돌며 청소년 선도에 앞장선다.
하루를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사는 박 회장. 그로 인해 익산의 장애우들과 청소년들이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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