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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농업선진국...이젠 6차산업으로 가치 높여야
익산신문 기자 / ikpress@naver.com 입력 : 2010년 04월 19일(월)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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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째 농정업무를 담당해온 유 정 도농기원 농식품개발국장(59). 버스는 물론이고 기차도 볼 수 없고 고작 하늘에 날아다니는 비행기만 보고 자랐다는 유 국장의 꿈은 어려서부터 일관되게 어떻게 하면 농사를 쉽게 질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결국 전북대 농학과를 졸업하고 들어선 농업연구직은 그의 꿈을 실현해주는 터전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이제 농업은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6차산업에 관심을 둬야 한다"며 "농업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12일 올 6월 정년을 앞두고 있는 유 국장을 만나 농업의 미래를 들어봤다.
-우리 농업의 미래는.
"우리나라 농업기술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다. 농업만큼은 선진국이 된 지 오래다. 다만 이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6차 산업에 비중을 둬야 한다. 또 노하우를 후진국이나 개도국에 전수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미 농진청은 동남아 케냐 파라과이 등에 농업기술연구직들을 파견했다. 이는 그들 뿐 아니라 우리 농업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서로 상생하는 윈윈전략인 셈이다."
-전북도의 미래농업에 대한 대책은 뭔가.
"도는 '친환경'과 '농식품'으로 나눠 대비하고 있다. 농식품개발과는 미래형 먹거리를 개발하는데 초점이 맞춰 있고, 건강한 식품은 친환경 기술이 뒷받침해줘야 가능하다. 이를 균형적으로 도모하기 위한 차원이다."
-친환경 기술개발은 어떤 식으로.
"저비료 저농약이 아니라 이젠 무농약 무비료 시대가 됐다. 환경에 가장 가깝게 농사를 짓기 위해 유기농을 연구한다. 또한 최근 대두되고 있는 기후변동도 주목하고 있는 이슈다. 지구온도가 계속 올라가지 않는가. 이에 걸맞는 작목을 개발함은 물론 꽃매미 등 해외해충 연구도 지속적으로 병행하고 있다."
-농업의 발전사를 소개해달라.
"정말 급진전했다. 10년 단위로 사이클이 변하는 것 같다. 70년대만 해도 통일벼 등 녹색혁명으로 배고픔을 이겨냈다. 반면 80~90년대는 비닐하우스가 일군 백색혁명이랄 수 있고, 2000년대는 첨단농업이 대세다. 최근엔 식물공장처럼 토양 없이도 식물아파트가 가능한 경지에 이르렀다. 이 만큼 농업의 진화속도는 빠른 편이다."
-30여년 공직생활중 성과라면.
"용케도 근무기간 동안 녹색혁명과 백색혁명의 중심에 있었다. 이를 통해 풍부한 먹거리를 만들어냈다는 데 보람이 있다. 30여년사이 우리나라 농업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이런 가운데 기반조성을 위한 토양 만들기에 일조했다고 확신한다."
-대표 상품이라면.
"음~. 흑미였던 것 같다. 일반벼는 도차원에서는 육종개발을 못한다. 그래서 기능면에서 항암효과 황산화성을 방지하는 흑미에 관심을 뒀다. 다수확보다 고품질에 주목했고, 이를 통해 신농흑찰벼와 신명흑찰벼가 개발됐다."
-기억날만한 에피소드를 소개해달라.
"오래 전 얘기다. 20여년 토양연구에 매달렸는데 1980년 무렵 계화도 간척지를 연구했던 기억이 물씬하다. 염농도가 높아 벼농사가 잘 안됐다. 토양조사를 위해선 저수지는 물론이고 농수로물, 바닷물, 토양 등을 수집해야 하는데 바닷물을 취수하려다보니 통제구역을 넘어섰다. 당시만 해도 남북이 냉전시절이라 간첩으로 오해했던 모양이다. 경찰서 가서 해명하고서야 풀려났던 기억이 오롯하다."
-어렸을 때 꿈은.
"시골서 크다보니 보고배운 게 농사 밖에 없었다. 임실 삼계라는 곳이 임실에서도 오지 아닌가. 버스도 기차도 안보이고 날아다니는 비행기만 보였다. 그러다보니 늘 농사를 쉽게 짓는 방법만 궁리했다. 그래 대학도 농대를 선택한 것이다. 졸업 후에는 교직과 연구직을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꿈을 쫒아 연구직을 선택했다. 농토 개량하고 품종개량하고 한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때 꿈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6월이면 정년이다. 아쉬움이 많을 것 같은데.
"토양지도를 바꿀 때가 됐는데 그 일을 마치지 못하고 그만두는 게 가장 큰 아쉬움이다. 또 하나는 로열티를 주고 수입해오는 원예작목의 품종개발을 이루지 못한 점이다. 로열티를 줄일 수 있었어야 하는데…."
-앞으로 계획은.
"퇴임하면 산을 좋아하니까 도내에 있는 산을 모두 정복할 생각이다. 진안약초연구소에 있을 때 진안 군내 17곳의 산을 계획했는데 11곳에 그쳤던 게 두고두고 아쉬웠다. 이제 기회가 왔으니 도전해야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어서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 통일만 된다면 북한에서 농업기술 가지고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웃음)."
/글=김영애 기자?사진=김봉래 기자
<취재를 마치며>
유 정 농식품개발국장은 박사고을로 알려진 임실 삼계면에서 태어났다. 초등을 마치고 전주에 유학 온 그는 전북대 농대 농학과를 거쳐 공직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후 20여년간 토양업무에 매달렸고 농토개량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던 시절이어서 험한 일도 많았으나 이젠 모두 추억이 됐다며 활짝 웃는다.
올 6월이면 공직을 떠나게 되는 유 국장. 30여년 전북의 농업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그답게 원예작목의 로열티 걱정을 끝내 내려놓지 못한다. 또한 다시 찍어내야 할 '토양도' 작업을 손대지 못하고 떠나게 된 안타까움도 절절하게 토로한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그들이 있으므로 전북의 농업이 진일보했음에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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