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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연소촉매사업 익산 신세계로 견인 - 유랑면 전북소상공인연합회 회장
익산신문 기자 / ikpress@naver.com 입력 : 2010년 03월 15일(월)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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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 오래 몸을 담았던 유랑면 전북소상공연합회 회장(65).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과 익산 발전을 염두에 뒀다며 한나라당으로 말을 갈아탔다. 그리하여 얻은 직책은 한나라당전북도당 정책위원장. 이를 십분 활용해 지난해 연말 그는 대어를 하나 낚아 올렸고, 중국으로부터 익산공단내 모 기업과의 투자유치를 이끌어낸 것. 이를 매개한 것이 그였고, 특히 한나라당이라는 당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8일 본사를 방문한 그를 만나 투자유치 배경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뿌듯하셨을 것 같은데.
"정말 그랬다. 중국은 시작일 뿐이다. 현재 미국과 일본, 필리핀 등지에서도 러브콜이 와 있다. 조만간 익산이 녹색성장의 새장을 여는 구심점이 될 것이다."
-대체 어떤 사업인가.
"간단히 말해 '석탄연소촉매제'다. 석탄에너지의 화력을 높여주고 재는 줄여주는 획기적인 제품이다. 진출한지 5년 만에 중국서안열공연구원의 제품인증을 받게 됐다. 이후 중국 허난성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제품인증이 이어졌고, 중국내 한중일 중기투자촉진회의 투자제의를 받아 시장개척의 문을 연 것이다. 무엇보다 이 제품은 현 정부가 화두로 삼는 저탄소 녹색성장과 맥이 닿아있어 앞으로 일자리창출 외자유입 등 엄청난 효과가 기대된다."
-매개역할을 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한나라당도당 정책위원장 자격으로 참여 요청을 받았고, 중국의 특성상 정당 관계자가 필요하다는 전언이었다. 또 후배사장이 도움을 요청해왔다."
-앞으로 전망은.
"무궁무진하다. 일단 중국의 문을 열었으니 해외진출기반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일자리만도 500여명에 외자유입은 2천억정도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주당 생활을 오래했는데.
"그렇다. 사무국장도 하고. 그런데 왜 한나라당이냐고 묻는 것 아니냐.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나 지역사회를 위한 선택이었다. MB와는 서울시장 때부터 인연이 있었다. 그 인연을 적극 활용해 우리 시에 유익한 일을 만들어낸다면 얼마나 보람 있겠는가. 일을 좀 하고 싶었다. 시민들도 생각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좀 더 설명해 달라.
"일과 정치는 다르다. 진정한 것은 익산시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익산의 인구가 매년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외면만할 수는 없잖은가. 숨통을 틔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더도 덜도 말고 '묘비명'에 열심히 일하다 간 사람으로 기록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초 시장후보군에 이름이 올랐던 것으로 아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마디도 꺼낸 바 없는데…. 다만 정당을 떠나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열심히 하고 싶다. 평가는 다음으로 미루고…."
-정치 입문 계기가 궁금하다.
"1988년 그러니까 평민당익산지구당으로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시의원도 됐고…."
-어떤 정치인이었는가.
"소신을 굽히지 않고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편이었다. 이런 연유로 종종 동료의원들의 질타도 듣곤 했다. 특히 전기요금고지서에 TV시청료를 합산발급하는 '통합고지서' 투쟁은 언론의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결국 통과시켰다."
-요즘 정치판을 어떻게 보시나.
"지역정서가 나뉘다보니 혼돈 그 자체다. 정당공천제를 고수하므로 정당이 공천권만 행사하려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아닌 것 같다."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직도 갖고 계신데.
"영세상인들의 권익을 대변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현재 도내에는 1600명의 소상공인들이 활동중이다. 이들의 세무기장을 대행해주기도 하고 자금 대출도 알선해주고 있다. 이제 중국과 문을 열어놨으니 소상공인들도 다양한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본래 고창생으로 안다.
"인연이란 계획된 것이 아니잖은가. 익산에 정착한지 벌써 40여년째다. 학맥도 전혀 없는데다 인맥조차 없어 처음엔 고생 정말 많이 했다. 하지만 정직과 성실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혹 인생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도.
"링컨이 최고였다. 백악관에 기도실을 만들어두고 늘 기도하지 않았는가. 학력이 없어도 성경에 기초해 삶으로 국민들에 추앙받았던 사실은 두고두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입대했을 때가 마침 김신조 일당이 쳐들어온 당시였다. 육군단사령부사진반에 있었는데 시신을 업어내 놓고 사진을 찍곤 했다. 살면서 그 일이 좀체 잊혀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 꿈은.
"대기업가가 되고 싶었다. 어려운 사람들도 돕고 경제발전에 기여도 하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자녀들이 일 좀 그만하라고 말리는 게 제일 서운하다. 아이들 나름대로 걱정에서 하는 얘기지만, 아직도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싶다. 일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잖은가. 돈보다 사회에 헌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정당을 초월해 뛰어들 각오가 돼 있다."
<취재를 마치며>
고창에서 태어났으나 교사였던 부친 영향으로 17번이나 전학을 다니며 고교를 졸업해야 했던 유랑면 회장. 항공사진 등 사진을 전공했던 그는 익산에서 예식장을 차린다. 40여년이 지난 현재 그를 거쳐간 신랑신부만도 5천여쌍. 예식계의 대부인 셈이다.
이런 그에게 연애결혼 관련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만 해도 연애가 흉이 되던 시절이어서 부친은 '신성한 교육자의 자녀가 연애한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냈음은 물론 천안 처가도 전라도 개땅쇠에겐 딸을 못준다고 우겨 결혼이 어려웠다. 입대한 뒤 그는 매일 양가에 편지를 보냈고 결국 보름 만에 허락을 받아내고 만다. 그렇게 보낸 편지는 하루 7통까지, 모두 674통에 달했다.
죽는 날까지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유 회장. 그는 매일같이 동분서주하며 지역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발품을 판다.
/글=김영애 기자?사진=김봉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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