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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양과 진주소씨 - 정복규 본사사장
익산신문 기자 / ikpress@naver.com 입력 : 2010년 03월 08일(월)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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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1486-1562)은 조선소 진주소씨(晋州蘇氏)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중종 때 문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친다. 종사관으로 명나라 사신을 맞아 시문으로 화답, 그들을 놀라게 했다.
병조. 이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이른 양곡은 인종 즉위 후 대윤 일파의 탄핵을 받자 전북 익산에 은거했다. 그는 명종 17년(1562년) 77세에 별세하여 화암서원에 배향되었다. 신도비는 전북 유형문화재 159호로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 탄곡 용화산에 있다. 신도비 옆에 그의 무덤이 있다.
그는 사직하고 익산 도내골에서 줄곧 살았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20여 년동안 명망 높은 선비, 유학자로서 존경을 받았다. 특히 익산 지역 선비들의 기풍을 진작시키고 사회기강을 바로 잡는 데 힘을 기울였다.
양곡은 중종, 명종 때 삼절(三絶)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아버지와 형들의 행장(行狀)을 손수 지었고, 익산 금마에 있는 그의 부인의 묘갈명(墓碣銘)을 직접 썼다. 서예에 뛰어나 송설체(松雪體)로 일가를 이루었으며 문집으로 ‘양곡집’이 있다.
소세양은 한 때 황진이와 러브 스토리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송도의 명기 황진이가 절세의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친구들과 약속했다.
“그녀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나는 그와 30일만 함께 지내면 추호의 미련도 없이 깨끗하게 헤어지리라. 만약 하루라도 더 머문다면 나를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좋다.” 하고 호언장담했다.
송도에 가서 그녀를 보니 과연 듣던 대로 절세의 미인이었다. 그들은 30일간 계약을 하고 애정생활에 들어갔다. 마침내 기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둘이는 이별의 술잔을 나누었다.
명월 황진이는 헤어지는 슬픔의 기색을 조금도 내보이지 않았다. 다만 ‘헤어지는 마당에 어찌 할 말이 없겠느냐’ 며 시 한수를 써서 양곡에게 주었다. ‘달빛 아래 뜰에는 오동잎 모두 지고, 찬서리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다락은 높아 높아 하늘만큼 닿았는데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내일 아침 눈물지며 이별하고 나면 임 그린 연모의 정 길고 긴 물거품이 되네.’
그러자 소세양은 “내가 어찌 인정이 없겠느냐. 나는 사람이 아니라도 좋다. 다시 머무르리라”고 했다. 그는 결국 며칠을 더 머물며 황진이와 사랑을 불태웠다. 그 후 양곡은 친구들한테 사람이 아니라는 놀림을 받았으나 전혀 괘념치 않았다.
그러나 한 번 떠난 소세양은 간단한 편지 한통만 있었을 뿐 다시는 소식이 없었다. ‘떠날 때 떠나야한다. 그래야 뒷모습이 아름다운 법이다’ 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황진이는 종종 인편을 통해 그리움이 가득 담긴 시를 보냈다.
가지 말라는 말 한마디만 했다면 소세양은 안 갔을지도 모른다. 그는 매사에 다정다감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영영 가버리고 말았다. 500년이 지났어도 그들의 사랑은 이렇게 전설처럼 전해진다.
한편 진주소씨의 시조는 소경(蘇慶)이다. 그의 선대는 신라 6부촌장 중의 한 사람인 돌산 고허촌(突山 高墟村) 소벌도리(蘇伐都利)이다. 진주 본관은 내력이 있다.
소경 은 80이 넘도록 손자가 없었다. 어느 날 꿈에 선조인 소벌공이 나타나 도사곡(지금의 진주시 상대동)으로 이사를 하면 9명의 장군을 얻는다고 했다. 진주로 이사한 뒤 며느리 석씨가 손자 소복서를 낳는다.
그 후 소복서가 총관(摠管)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소격달에 이르기까지 직계에서 9장군이 배출된다. 그래서 후손들이 소벌도리를 원조로 하고 진주를 본관으로 했으며 소경 을 중시조로 하였다. 군정시절 사법부 차장을 지낸 소완규, 2. 3. 5. 6대 국회의원으로 초대 참의원 부의장을 지낸 소선규 형제도 진주소씨 인물이다.
주요파는 ▲남강공파 ▲참판공파 ▲첨사공파 ▲곤암공파 ▲포정공파 ▲쌍봉공파 ▲양곡공파 ▲흥양공파 ▲첨추공파 ▲병사공파 ▲만호공파 ▲보성파 ▲용담파 ▲계전공파 ▲은진파 ▲안변파 ▲참봉공파 ▲생원공파 ▲행정공파 ▲수원파 등이다. 조선시대에 67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인구는 2000년 현재 37,184명이 있다. 익산지역의 집성촌은 왕궁면, 금마면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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