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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론 내실다지고 밖으론 운동성 회복
익산신문 기자 / ikpress@naver.com 입력 : 2010년 02월 22일(월)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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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김은경 익산YWCA회장
지난달 28일 익산YWCA회장에 선임된 김은경 목사(51?익산중앙교회 담임). 창립멤버였던 만큼 익산YWCA에 대한 애정이 지극한 그는 사무처 강화는 물론 인력충원으로 조직 기틀다지기에 힘쓰겠다고 밝힌다. 20% 밖에 여지를 두지 않았는데 회장에 오르게 됐다는 그는 부담도 적잖으나 내부 역량강화와 함께 운동성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덧붙인다. 지난 17일 익산중앙교회에서 김 회장을 만나 앞으로의 포부와 소감을 들어봤다.
-회장 선출이 뜻밖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랬다.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다만 부회장이기 때문에 20% 정도는 염두에 두고 있었다. 또 마땅히 전임 회장께서 재임될 거라 판단했었고…. 하지만 인사는 하나님의 몫이다. 어깨가 무겁긴 하나 열심히 봉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
-어떤 구상을 갖고 계시나.
"새로운 구상보다 이미 진행됐던 사업 중심으로 꾸려갈 계획이다. 단지 YWCA의 정체성 회복은 적시하고 있다. 재정도 열악한데다 사무처 조직과 인력이 너무 취약하다보니 제구실을 하는데 한계가 많다. 내부적으로는 역량을 강화시키고 외부적으론 운동성 회복에도 나설 생각이다."
-운동성 회복이라면.
"사회나 정치 환경이 많이 변화됐다. 이런 가운데 사회단체들이 정부 위탁사업을 받으면서 운동의 정체성을 상실했다. 또 시민단체들이 민주화이후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방향성이 휘청거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약체가 됐다. 당초 설립 의도인 기독정신으로 돌아가 창조질서를 보존하고 지속가능한 가치를 표방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의 운동성 회복을 얘기했다."
-YWCA와의 인연이 각별했던 것으로 아는데.
"맞다. 20대 초반 재수하다 우연히 광주YWCA와 인연을 맺었다. 도시 근교면서도 오지보다 더 오지였던 곳에서 1년 정도 봉사했다. 당시만 해도 금남로 옆에서 자랐기 때문에 농촌은 전혀 몰랐었다. 그로 인해 농촌을 깊이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 무렵 세계관도 완전히 바뀌게 됐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당시 부친께서는 형제자매 모두 의대가기를 희망하셨다. 허나 수학성적도 나빴고…. 좌절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 아이들 목욕도 시키고, 함께 놀다보니 농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또 신협운동 등 의식화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였던 점도 작용했던 것 같다."
-늦었지만 소감 한마디.
"선임 회장단이 애쓰셨다. 수락은 했으나 무거운 마음은 여전하다. 감사하게도 시무하는 교회 성도들이 열심히 하시라고 후원해줬다. 그게 큰 힘이 된다. 사실 YWCA는 애정이 많은 단체다. 공익성이 강한 만큼 정체성 되찾기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익산과는 어떻게 연이 닿았나.
"남편 덕분이다. 시아버지께서 함열교회 목회자셨고, 1992년 춘포 모 교회에서 청빙요청을 받았다. 남편으로 보자면 고향에 온 셈이다. 그 무렵 익산에는 YWCA가 없어 아쉬움이 많았다."
-그 아쉬움 때문인가. 익산YWCA 창립멤버로 활약하셨는데.
"1990년대 중반 재건 시기가 있었다. 정관이나 지침 등에 의거해 나름대로 준비했으나 일거에 무너졌다. 결국 2002년 재건에 성공했고 이사와 평생회원으로 활동중이다."
-기억에 남는 일이라도.
"1월말 2박3일로 열린 총회를 다녀오면서 생각이 많았다. 청년시절 모셨던 선배들은 이미 원로가 되셨고, 무척 감격스러워 하셨다. '그 김은경 맞느냐'고 물으셨고 서로 지나온 세월을 실감했다. 조아라 회장, 이애심 총무 등 그분들 밑에서 제대로 훈련받은 셈이이나 결혼과 함께 목사의 아내로 살면서 떠나고 말았다.
-익산시는 친화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사실 남녀는 파트너가 돼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 아직도 우리사회는 걸맞는 슬로건과 문화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콘텐트가 중요하다. 동기부여가 필요한 만큼 구체적으로 내면화할 수 있는 매개는 필수다."
-YWCA의 내실을 말씀하셨는데 어떤 식으로.
-YWCA의 세부적 실천력은 뛰어나다. 반면 정책파트너 역할은 많이 약해졌다. 이를 보고 원로들은 돈 되는 사업만 하고 있다고 일갈한다.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슴 데는 적극 공감한다. 정책제안이 약했던 부분을 보완할 생각이다."
-어렸을 때 꿈은.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다. 신비감이 있지 않은가. 종교적으로는 헌신하면서 살았던 어거스틴 김마리아 등을 존경했다. 아무래도 그 무렵 위인전을 많이 읽은 탓일 게다. 고교시절엔 성자가 되고 싶었다. 허나 현실을 보고 엄청나게 절망했고 고교 2학년 때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올해 계획이라면.
"우리겨레하나되기 대표로 활동중이라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최근 미국이 북한 체제를 인정하는 움직임이다. 이러한 때 6.15남북공동선언 합의대로 남북도 상호협조를 모색해야 한다. 세계사 속에서 평화의 민족으로 서는 깃발이 됐으면 하는 소망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저출산 고령화 이주여성 문제는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다. 섬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대부분 다문화가정 2세들이다. 이주여성들이 통합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정부는 고민해야 한다. 또 올해는 5.18 30주년이다. 더 이상 민족끼리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역사를 너무 안이하게 대하고 결과에 무책임한 처사다. 모쪼록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김영애 기자?사진=김봉래 기자
<취재를 마치며>
김은경 익산YWCA 회장은 바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익산Y 회장, 중앙교회 담임목사 말고도 전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전발연 여성정책연구소 이사, 전북의제21 여성위원장,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이사 등등. 이루 헤아리기가 어렵다.
어려서부터 그는 딸이라고 별다르게 차별당한 경험이 없었다. 그런 그가 여성운동가로 성장한 배경에는 현모양처였던 할머니가 자리한다. 말하자면 역할모델인 셈이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살아계실 당시는 할머니의 삶에 엄청난 회의를 느꼈으나, 여성사를 공부하면서 절절하게 가슴으로 깨달았다고. 신학대학 시절 할머니를 모델로 한 1인칭 소설과제물은 소설가로 전향하라는 얘기를 들었을 정도.
'은(恩), 경(敬)'이라는 그의 이름은 모친이 산후 열흘간이나 옥편을 뒤져 지어준 것. 지천명에 접어든 김 회장은 이름값만큼 은혜롭게 공경하면서 사는 중이라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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