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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익산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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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에서도 하루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어제는 내게도 꽤 큰일이 닥쳤다. 20년 만에 다시 102km를 달린다. 순천만 울트라마라톤이다. 무박 2일. 오후 5시에 출발해 다음 날 오전까지다.
철마에 몸을 싣고 순천으로 향하면서 잠깐 눈을 붙이고 싶다. 몸 따로 마음 따로다. 밤새워 달릴 생각에 눈꺼풀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차창 밖은 온통 푸르다. 저 푸름이 어둠으로 바뀌고 다시 동이 틀 때까지 걸음을 옮겨야 한다. 이번 대회는 여느 때와 다르다. 1km를 달릴 때마다 100원씩 모금한다. 많은 이의 관심과 응원을 어깨에 지고 달린다.
출발은 좋았다. 가을을 몰고 오는 바람은 선선하고, 기우는 햇살도 다정하다. 출발선에 서면 누구나 자신만만하다. 세월은 그대로인데 거울은 참 많이도 늙었다. 마음은 아직도 청춘의 이력서를 들춰보고 있으니. 그러다 울트라의 한 방을 맞으면 안다. 마이크 타이슨의 말처럼 누구나 다 계획은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걸음을 옮길수록 길은 본색을 드러낸다. 하나를 넘으면 또 고개가 나타난다. 오르막에서는 다리가 무겁고 내리막에서는 무릎과 발가락이 비명을 지른다. 이런 코스를 만든 사람은 전날 부부싸움을 했거나 심보가 참 못됐다고 생각한다.
시나브로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온다. 이때 울트라 러너들은 광부가, 반딧불이가 된다. 이마에 작은 등을 달고 어둠 속에서 길을 캔다. 꼬리에는 또 하나의 불빛이 반짝인다. 수십, 수백 개의 반딧불이 순천만의 어둠을 살린다.
검푸른 하늘에 시린 별들이 무수히 박혀 있다. 하나씩 따다가 지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아차! 별을 따오면 동이 틀 무렵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할 텐데, 그게 또 보통 일이 아니다. 결국 별은 마음으로만 딴다.
70km를 지날 무렵이다. 몸과 마음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다리는 그만했으면 하고 마음은 아니라고 한다. 희미한 어둠을 뚫고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아들이다. 나를 놀라게 해주려고 이제나저제나 두어 시간을 기다렸단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애써 삼킨다. 아들보다 앞서 내 마음에 새벽이 찾아왔다. 몸은 물먹은 솜이지만, 발걸음은 거짓말처럼 가볍다. 역시 사람은 밥만 먹고 달리는 게 아니다. 아들의 깜짝쇼 한 번에 몇십 킬로미터쯤은 더 달릴 수 있다.
결승선 부근에 대회장 근처엔 얼씬도 않겠다던 아내가 며느리, 손녀와 기다리고 있었다. 달아나려던 기운이 다시 솟는다. 울트라마라톤 코스에는 수많은 보급소가 있지만 가족만큼 강력한 보급소는 없다. 마침내 결승선을 넘는다. 102km. 백 번 하고도 세 번을 주저앉아도 부족할 거리다. 달린 것은 두 다리여도 끝까지 나를 데려가는 것은 마음이다. 그 마음을 움직인 건 혼자의 의지가 아니다. 밤새 함께 달린 사람들, 길가에서 건네준 박수와 응원, 마음을 보태준 후원자들과 가족이다.
그저 기록 하나를 만든 게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등에 업고 긴 터널을 건넜다. 돌아보면 인생도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오르막이 있고, 어둠이 있다.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달렸느냐가 아니다. 어둠 속에서 어떤 불빛이 되느냐가 아닐까. 함께 간다는 것은 서로의 어둠을 밝혀주는 일이다. 순천만의 밤은 깊어도, 어둡지만은 않은 이유다.
별을 따서 사람들에게 안겨주고 싶었지만, 돌아와 보니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다. 70km 지점에서 나를 놀라게 한 아들이, 결승선에서 기다린 가족이 별이다. 모금에 정성을 보태고 길 위에서 박수를 보내준 사람들, 밤새워 함께 달린 러너들의 작은 불빛도 별이다. 20년 만의 102km. 지구를 서너 바퀴 도는 게 이런 기분일까. 이제야 알겠다. 밤이면 사람은 빛이 되는 까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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