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익산신문 | |
생업에 종사하면서 잠시 짬을 내 자원봉사 활동을 마다하지 않는 열혈 일꾼이 있다. 처음 자원봉사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들 때문이었다.
금쪽같은 자식이 안전한 세상에서 아무 탈 없이 살기를 원했던 엄마는 당장 교통안전 지도부터 팔을 걷어붙였다.
매일 아침 횡단보도에서 등교 안전 교육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마침내는 교통 신호등을 직접 차에 싣고 다니며 어린이 교통 안전 교육에 진심을 다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03년 전국 처음으로 익산시 자율방재단 출범에 앞장섰던 정영미 단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방재단 초기부터 회원들이 사비를 털어 재난 현장에서 도움을 간절히 원했던 이웃들의 손을 잡아주고 아픔을 함께 나눴다. 현재는 익산 지역에만 회원이 320명에 달해 소외 계층 지역과 재난 현장을 누비고 있다.
유례없는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요즘엔 시원한 생수병을 들고 경로당 노인과 농촌 일터 농민을 찾아 더위를 식혀 준다. 정 단장도 익산 신동에서 음식점을 하면서도 주말을 잊은 채 매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봉사 현장을 찾는 게 일상이 돼버렸다.
그가 이끄는 자율방재단은 말 그대로 재난을 예방하는 모임체이다. 매달 4일이면 안전점검 캠페인 전개를 비롯해 장마철 맨홀 뚜껑 청소, 겨울철 미끄럼 방지 모래주머니 만들기 봉사뿐 아니라 경로당과 재난 시설 점검까지 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건 봉사활동이 끊임없이 계속되는데도 행정의 지원과 관심은 생식내기 수준에 그치고 있다. 자율방재단 규모와 역할이 전국적으로 커지면서 7년 전에 행자부 산하로 편입됐음에도 3년 전부터 1년에 300만원 정도 지원금을 받는 게 고작이다.
무엇보다 정 단장은 장애를 앓아 온 아들이 무탈하게 잘 성장해줘서 행복감을 느낀다고. 덕분에 그는 남에게 덕을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초심을 잊지 않는다고 귀띔한다.
그가 운영하는 음식점도 봉사 활동의 사랑방 역할을 한 지가 오래다. 방재 활동의 실사단과 회원들의 모임이 약속돼 있으면 열일 제쳐두고 정성스럽게 음식 대접을 하고 극진하게 모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방재단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회원은 80명 안팎으로 50~60대 여성이 주축이다. 그러나 최근엔 자율적인 방재단이라곤 하지만 활동 범위가 넓고 봉사 횟수가 늘어나면서 행정 기관과의 소통과 지원 시스템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는 봉사활동의 수혜자가 늘어나고 적기에 도움을 받는 맞춤형 재난 행정의 현주소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영미 단장은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에서 아무런 사고 없이 뛰어 놀고 해맑게 자랐으면 좋겠다" 면서 "나아가 어른들도 예고없이 닥친 재난 현장에서 신속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 시스템이 빨리 갖춰 지길 바란다" 며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김영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