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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수 석공예 명장
익산신문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09년 12월 21일(월)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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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웃는다고? 돌에서 향기도 난단다. 얼토당토않은 것 같으나 돌과 40여년 보낸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주억거려지기도 한다. 돌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진다는 석공예명장 김옥수 씨(55?일심석재 대표). 그는 도무형문화재로는 전국에서 유일한 석공예 대표 명장이다. 그가 석재산업의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은 석산개발이후 원상복구. 이는 현실성이 없다며 탁상공론을 벗어나 현실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6일 김 명장을 만나 그가 걸어온 길과 석재산업 현황에 대해 들어봤다.

-돌 작업은 언제부터.
"14살 때였다. 돈 벌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상경했고, 고향선배를 만났다. 그때 선배로부터 권유를 받았고, 석공예의 대부격인 고금동 선생과도 인연이 됐다."
-벌써 42년째다. 후회없으신가.
"전혀다. 다만 돌 작업이라는 게 쉽지 않고, 그런 점이 부담으로 작용하긴 했다. 돌 깎는 일은 타는 듯한 햇빛아래 맨몸으로 내버려진 고통과 같았다. 거기다 시간이 흐르면서는 자신을 깨우치고 찾아가는 수행의 과정이기도 했다. 부끄럽게도 숨도 쉬지 않는 돌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한없이 낮아지고 작아지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심오한 기운이 느껴진다.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으시다면.
"늘 최선을 다할 뿐이다. 큰 작업을 하면 큰 대로, 작은 작품은 작은 대로 지극한 열정과 관심이 필요하다."
-석공예 무형문화재는 드문 것으로 아는데.
"맞다. 국가무형문화재는 경기도에서 활동하는 이재술씨가 있고, 도무형문화재는 유일하다. 결국 전국적으로 석공예 무형문화재는 2명이 있는 셈이다."
-문화재들이 할 일은 무엇으로 보나.
"사실 보존도 보존이지만, 돌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 생각해보라. 문화는 물론이고 도로 항만 제방 건축 등 돌이 사용되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돌은 그저 흔하디흔한 것으로 간과되는 경향이 없잖다. 이를 바꾸는데 사실 공예의 미학이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맥을 잇는 전승작업에도 매진하고 있다."
-요즘엔 기계가 발달돼 있어 돌을 다루는 게 다소 쉬울 것 같은데.
"예전보다는 훨씬 여건이 나아졌다. 공부할 때만 해도 망치로 맞아서 안다친 곳이 없을 정도였다. 또 일은 고된데다 먹는 게 부실하다보니 영양실조에 걸리기도 하고…. 기술 배우는 것은 참을 수 있었으나 나름대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황등석은 어떤 면에서 높이 평가되나.
"익산의 돌을 제대로 논하자면 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허나 각설하고 표면적인 이유만 들어보자. 강도가 굉장히 좋다. 또 철분함유랑이 적어 미학적으로 적합하다. 이는 공예품이나 건자재로 매우 유용하다."
-돌문화보존회도 만드셨는데.
"같은 작업하는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했다. 5년 전 법인으로 설립했고, 회원은 현재 140여명에 달한다. 함께 모여 문화재 탐방도 하고 연구는 물론 세미나, 교육, 기능공 양성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익산의 석재산업도 정리해주신다면.
"익산은 마한?백제 거석문화의 숨결을 꾸준히 잇고 있는 지역이다. 게다가 미륵사지석탑과 왕궁리 5층 석탑, 연동리 석불입상 등 과거 찬란했던 석조예술 문화재가 산재돼 있기도 하다. 또 270여 개 업체가 함열, 황등, 여산 등 집단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전통적으로 석재산업이 발달해 왔다."
-돌문화축제는 어떤가.
"백제시대 유명한 아사달의 전통을 이어받아 우수한 석공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고자 마련됐다. 물론 석재문화 발상지 '익산'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차원도 있다. 현재 11회까지 치렀는데 아직까지는 잘 되고 있다. 9회와 10회는 축제위원장으로 직접 행사를 관장하기도 했다. 석재인들의 화합 장으로 그 몫을 다하고 있다. "
-석산개발로 인해 환경파괴 염려도 많다. 이에 대한 대책은.
"말씀 잘하셨다. 돌을 파낸 뒤 원상 복구해야 하는 우리 법은 문제가 많다. 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외국의 경우 정리한 뒤 공장이나 공원, 농토로 활용하곤 한다. 국민 편익시설로 개발하는 게 바람직하다. 입법하는 사람들이 탁상공론만 할 게 아니라 현장을 보고 방법을 ?아야 한다."
-어렸을 때 꿈은.
"어렵게 살아서 그런지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그래 국가에 도움되는 일을 하는 게 소원이었다. 그러다 기술을 배우면서는 이 분야 최고가 되고 싶었다."
-꿈을 이루신 셈이다.
"그렇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고, 나름대로 노력도 많이 했다. 무엇보다 꿈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작업에 대한 애정이 특별할 것 같다.
"글쎄…. 애정보다는 작품이 만들어질 때의 변화를 보는 것이 좋다. 완성되는 과정에서 성취감이 생긴다. 힘든지도 모르고 재미있을 뿐이다. 만약 싫고 짜증나는 일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
"특별한 기억은 없다. 평생 작품을 만들다보니 때로 큰 기쁨을 선물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충격적일 정도는 아니지만 맘에 쏙 들 땐 제법 기쁘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지 않은가. 그 말을 곱씹게 할 때가 종종 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익산이 석재도시인 만큼 석재박물관은 필수다. 그럼에도 여지껏 석재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하나 마련돼 있지 않은 점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석재박물관과 전수관을 짓는 것은 찬란한 석재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출발점이나 한가지다. 정부에서 제도적인 지원을 검토해봐야 한다."

<취재를 마치며>
아사달의 후예를 자처하는 김 명장.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그가 석공예를 시작한 것은 단지 가난을 피하자는 방편이었다. 동네 선배를 따라 들어선 이래 망치는 42년째 그의 동반자이자 친구였다.
서울 망우리 신덕석기공사서 기술을 연마한 그는 21세때 제10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석공예 분야에서 은상을 획득하면서 솜씨를 과시한다. 이후 그는 당당하게 석공인으로 자리매김함은 물론 제자양성에도 적극 나선다. 그가 현재까지 가르친 제자만도 35명.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돌처럼 변함없는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김 명장. 돌문화보존회 이사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석공예 명장으로 도무형문화재로 새로운 인생을 계획중이다.
/글=김영애?사진 김봉래 기자
익산신문 기자  i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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