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한승진 황등중 교사 | | ⓒ 익산신문 |
최근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된 드라마 ‘참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교육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주변에서도 “드라마를 봤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큰 관심은 없었지만 결국 시청했고, 교육 현장의 문제를 날카롭게 다룬 점에서는 인상 깊었다.
현실에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극적으로 풀리는 장면은 통쾌했지만, 일부 폭력적 해결 방식은 불편함을 남겼다. 그럼에도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가볍지 않았다.
교권 침해를 다룬 장면에서 한 학부모는 “부모보다 교사가 내 아이를 더 잘 알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에 감독관은 “그 교사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자식”이라고 답한다.
짧은 대화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부모에게 자녀가 가장 귀한 존재인 것처럼, 다른 사람의 자녀 또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다.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교육은 건강해질 수 있다.
오늘날 우리 교육은 지나치게 경쟁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함께 성장하는 기쁨보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먼저 배우고, 학교가 협력의 공간이 아니라 경쟁의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교육의 본질은 흐려진다.
그렇다면 참교육은 무엇일까. 학생 인권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과거처럼 학생의 권리를 무시하는 교육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학생 인권만 강조해 교사의 가르칠 권한과 권위가 약화한다면 건강한 교육은 어렵다.
반대로 교권만 앞세우고 학생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도 올바르지 않다. 참교육은 학생 인권과 교권이 조화를 이루는 데서 출발한다. 학생은 존중받으며 배우고, 교사는 존중받으며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교육의 목표는 좋은 대학 진학만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어야 한다.
작은 농촌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육자로서 나는 학교의 모습을 통해 그 의미를 자주 느낀다.
우리 학교에는 특수교육대상 학생, 다문화가정 학생, 교육복지 대상 학생, 학습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이 함께 생활한다. 학업 성취도만 보면 도시의 큰 학교보다 부족해 보일 수도 있지만, 학교 안에는 사람을 향한 따뜻함이 있다.
학생들은 서로의 다름을 배우고, 친구를 돕고, 함께 성장한다.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어울리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며 이해의 폭을 넓혀 간다.
이러한 경험은 교과서만으로 배울 수 없는 중요한 인성교육이다.
교육은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성적은 단기간에 변화할 수 있지만 인성은 긴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친구를 이해하는 마음, 약자를 배려하는 태도, 공동체를 위한 책임감은 관계와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그래서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을 넘어 사람을 성장시키는 공간이어야 한다.
모든 학생이 1등이 될 수는 없지만, 모든 학생은 존중받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참교육’이라는 드라마가 단순한 콘텐츠로 끝나지 않고 우리 교육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무엇이 거짓 교육이고 무엇이 참교육인지 함께 고민하며, 학생과 교사, 학부모 모두가 존중받는 학교를 만들어가야 한다.
참교육은 특별한 정책이나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성장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성장을 소중히 여기고, 공동체 속에서 배려와 존중을 배우게 하는 학교.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참교육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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