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박광명 사단법인 행복이음 대표이사 | | ⓒ 익산신문 |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활동 지원은 왜 필요한가요?” “탈시설은 왜 해야 하나요?” “장애인 일자리는 왜 중요하고, 자립생활은 또 무엇인가요?”
우리는 흔히 활동 지원을, 신체를 돕는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탈시설은 시설 건물에서 나오는 그것으로 생각합니다. 직업은 그저 취업하는 것이고, 자립생활은 혼자 살아남는 것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만약 우리가 나이가 들어 몸이 불편해졌을 때, 혹은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누군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대신 결정해 버린다면 어떨까요? 무엇을 먹을지, 언제 일어날지, 누구를 만날지 내 의사가 단 하나도 반영되지 않는 삶이라면 그것을 온전한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이것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존엄에 관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활동 지원의 본질은 단순한 신체 보조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고, 내가 원하는 곳에 가며,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탈시설의 본질 역시 주소지를 옮기는 일이 아닙니다.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직업은 단순히 취업률 숫자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나의 역할을 선택하는 과정이며, 자립은 홀로 서는 능력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 장애인복지는 보호와 돌봄 중심에서 자기결정과 참여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장애인 거주시설 평가와 인권 지표에서도 서비스를 얼마나 제공했는가보다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었는가를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결국 좋은 복지란 ‘무엇을 주었는가? 가 아니라 ‘얼마나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게 했는가? 묻는 것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우리 익산시의 현실을 돌아봅시다. 해마다 복지 예산은 늘어나고 기관과 시설의 숫자는 채워지고 있지만, 과연 늘어난 숫자만큼 당사자가 체감하는 ‘진짜 선택지’도 넓어졌을까요?
현재 우리 주변의 복지기관들을 보면 이름과 간판은 다르지만, 제공되는 서비스와 운영 방식은 붕어빵처럼 닮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기관의 개수가 많다는 그것과 시민의 선택권이 충분하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해 최소한의 ‘표준화’는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사자의 삶을 한 틀에 끼워 맞추는 ‘획일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안에는 빨주노초파남보처럼 다양한 색깔이 있어야 합니다.
장애인이 자신의 욕구와 상황에 맞게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가 존재할 때, 비로소 자기 결정권은 진짜 현실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도시에 기관이 충분한가?”라는 질문에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시민이 선택할 만한 가치 있는 선택지가 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합니다.
“오늘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어디에 가고 싶습니까?”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
장애인복지의 출발점은 바로 이 당연하고도 평범한 질문에 있습니다. 복지의 본질은 수동적인 돌봄이 아니라 주체적인 자기결정입니다. 돌봄은 자기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일 뿐이며, 자기결정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시작점입니다.
우리 익산시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 없이 모두가 당당하게 살아가는 진정한 지역사회가 되는 길, 그것은 바로 우리 이웃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진짜 선택지’를 넓혀가는 데 있습니다.
결국 복지의 시작은 돌봄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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