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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텃밭…인성교육 동반돼야 미래담보"
김형중 원광보건대 교수
교원들은 인재 자양분 최선다해야 열매 튼실
야학봉사 통해 혜택 환원 지금도 봉사는 진행중
익산신문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09년 12월 14일(월)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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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신문

고교교장 퇴임후 대학 강단에서 제2 인생을 펼치고 있는 김형중 원광보건대 교수(62). 그는 '교육에 미친 놈'이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혼신을 다했다. 그 결과 '전북여고'는 일류고교로 도약했고, 그 역시 교장 퇴임과 함께 원광보건대 산학협력단으로 옮겨 다시한번 열정을 불태우는 중이다.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가 최근 시집 '어머니의 지게(한국문화사 刊)'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지난 10일 김 교수의 교육관과 인생관을 들어봤다.

-최근 고교에서 대학으로 활동처를 옮기셨다. 다소 변화가 있으신가.
"뚜렷하게 변화랄 것은 없고…. 인생의 후배를 양성한다는 입장이 변할 리 있는가. 어디에서든 늘 최선을 다할 뿐이다."

-30여년 교단생활을 정리하신다면.
"이상하게도 여고에 많이 있었다. 남고에는 1년 반 정도 있었나. 성격상 왈가닥 기질이 있는 남학생들이 더 맞음에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80년대 초반 남학교로 가려고 작업을 다했음에도 실패로 끝났다. 그 무렵 대만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그 마저 1983년 민항기 사건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었는지…(웃음)."

-외도하셨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는데.
"한때 교편을 놓고 조남조 전 지사 사무국장을 했다. 성장과정이 비슷해 존경하는 분이었는데,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실 때 도움을 요청하셨다. 당시 호남정서와 맞지 않는 정당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의아스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면 민정당 당원이 아니라 '조남조당'이라고 얘기하곤 했다(역시 웃음)."

-당시 활동상황이 듣고 싶다.
"제일 어렸고, 바람을 일으켰다는 평가도 들었다. 어림에도 사납다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으니 상상에 맡기겠다."

-2002년엔 교육위원에도 출마하셨고, 정치 성향이 풍부하신 편인가.
"글쎄…. 내성적인 편인데, 이상하게 정치 언저리에 있게 된다. 대학시절엔 총학생회장도 출마했었다. 말씀하셨다시피 교육위원에도 출마해 고배를 마셨다. 익산에선 이겼는데 완주 무주 진안 장수에선 졌다. 사실 무진장은 이질감이 없지 않다."

-내년 선거에도 뜻을 두고 있으신지.
"그럴 생각이다. 교육위원에 뜻을 둔 것은 교육에 대한 소신 때문이다. 현장에서 머리 맞대고 상의하면서 발전시키자는 차원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는지….정치하자면 도의원을 하지 왜 교육의원을 하겠나. 친구들도 왜 정치로 자신을 발가벗기도록 방치하느냐며 성화다."

-어떤 면들이 개선돼야 한다고 보나.
"사실 교육은 가정과 학교 사회가 서로 협력 보완하여 새싹을 길러내야 하는데 본질이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교육은 지적 장애아를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 가정도 사회도 학교도 모두 지적 비만만을 부추기고 있잖은가. 일류대 나와 사시를 통과하고도 연수원에서 자살하는 청년의 사례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중요한 것은 인성이 곁들여져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적성이 모두 달라서 나무라면 나무고, 화초라면 화초가 돼야 정상인 것이다. 배려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공교육이 인성을 중시하는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미래가 있다."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한마디.
"고교평준화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 평등교육이라는 의미는 좋으나 아이들의 개성이나 취향을 무시한 평준화는 생각해봐야 하잖은가. 예를 들어 영어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이 음악과 미술에서 역량발휘를 하기란 쉽잖은 일이다. 반대경우도 마찬가지다. 획일화를 막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학교의 역할을 소개하신다면.
"학교는 아이들에게 텃밭이다. 그 논리로 보자면 학생은 씨앗이고, 교원들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셋이 일치돼야 발전할 수 있다. 다소 질이 떨어지는 씨앗이라도 영양공급이 좋으면 좋은 결실을 이룰 수도 있잖은가. 또한 좋은 씨앗이라도 자양분이 척박하면 튼실한 열매를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전북여고를 일류대로 바꾸셨다는 얘길 들었다.
"그건 과장된 면이 없잖다. 다만 교사들의 의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잘 모셨다. 관리자라기보다 더불어 한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민주적 운영에 노력했다. 그 결과 많은 교사들이 변화됐다.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교사들도 벽을 허물고 서로 어우러졌다. 학생들에게는 독서를 강조했다. 사비를 보태 책을 사고, 특히 문제아들에게 선물로 주곤 했다. 이런 방식들이 적절하게 먹힌 것 같다."

-자원봉사 얘기도 심심찮게 나오는데.
"대학 4학년때 야학인 원광고등공민학교 교사로 봉사했던 게 시초였다. 배움의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저녁을 쫄쫄 굶어야 했고, 눈 오면 눈이 들어오는 교실임에도 열정은 대단했다. 그때 교육자로 여생을 바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아이들은 지금도 만날 정도로 정이 돈독하다."

-이후 무궁화중학도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아, 그건 선배와 같이 했었다. 4년 정도 봉사했고 이후론 늘 봉사에 관심을 쏟았다. 전북여고 교장 때도 하계방학이면 아이들과 함께 농촌봉사활동에 나섰다. 태안기름제거도 함께 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어렸을 때 꿈이 궁금하다.
"별다른 것은 없다. 다만 초등학교 시절 한의사였던 숙부님을 닮았으면 했었다. 아마 그 꿈을 쫒았어도 잘했을 것 같다. 교육자를 희망한 것은 이리농림 3학년때였을 것이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농고 나와 농사나 짓자는 심산이었는데, 막상 고3이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농사는 못짓겠더라. 그래 모친께 대학 입학금만 대주십사고 부탁드렸다. 당시는 쌀 4가마니값이었으니 논 한마지기는 팔아야 했다. 이후 4년간 아르바이트를 놓지 않고 학교를 다녔다."

-인생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면.
"무엇보다 모친을 잊을 수 없다. 문맹이셨으나 항상 남 가슴 아프게 하지 말라셨다.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밖에도 앞서 얘기했듯이 조남조 전 지사, 윤여웅 제일건설 대표, 류충렬 벽성대 이사장 등 많은 분들이 스승이셨다."

-벽성대는 굉장한 경쟁률을 뚫고 임용됐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1995년이다. 공채에 응시해 임용이 됐는데 경쟁률이 30대 1이었다는 소리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럼에도 지난 2002년 선거 때 불법이라도 동원한 양 문제를 제기해 불쾌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류 이사장은 따뜻하고 이해심이 많은데다 매우 훌륭한 분이셔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 분은 지금도 '김 교장, 김 교장' 이렇게 부르신다."

-앞으로 계획이라면.
"교육자로 시작했으니 전북교육 발전을 위해 혼신을 다할 생각이다. 후배 양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한 알의 밀알이 대수겠는가."

<취재를 마치며>
곽란으로 헤매면서도 수업을 나서 동료교사들로부터 '교육에 미친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김 교수. 당시 그는 교단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들 시간을 훔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은 1명이지만 6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었다고 덧붙인다.

등산을 즐기는 그는 대학시절엔 아예 산악회를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다. 올라갈 때는 고통이나 정상에 서면 이뤄냈다는 쾌감 때문에 산에 올랐고, 하산할 때의 홀가분함은 또 말해 무엇하랴. 책읽기도 좋아했던 그는 결국 문학박사에서 시인으로까지 진화했다.
고창에서 태어나 김제중학에 이어 이리농림, 원광대를 졸업하고 익산에 정착한 그는 인성을 앞세운 교육실현을 위해 다시 한번 도약을 준비중이다.
/글=김영애 · 사진=김봉래 기자
익산신문 기자  i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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