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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현장탐방 - 황등교회
사랑의 종소리에 깃든 140년의 역사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26년 05월 22일(금)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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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진 황등중 교사
ⓒ 익산신문
익산시 황등면 황등시장 중심에 자리한 황등교회에는 오랜 세월을 견디며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함께 울려 온 특별한 종이 남아 있다. 

오늘날 ‘사랑의 종’이라 불리는 이 종은 단순한 예배 도구를 넘어 한국 근현대사와 지역 공동체의 삶, 그리고 한국교회의 역사를 증언하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현재 황등교회 종탑에 걸려 있는 종은 1884년 미국 뉴욕에서 제작되었다. 이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알렌이 조선에 들어온 해와 같은 해이며,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한국에 입국하기 1년 전이다. 

한국 개신교 선교의 여명이 밝아오던 시기에 제작된 종이 오늘날 황등교회에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 종은 현존하는 한국교회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으로 알려져 더욱 가치가 크다.

황등교회의 첫 번째 종은 1936년 3월 31일 제작되었다. 당시 교회 종은 단순히 예배 시간을 알리는 도구가 아니었다. 

종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은 교회로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서로의 안부를 나누며 공동체를 이루었다. 특히 시장과 상권이 발달했던 황등에서 교회 종소리는 마을의 하루를 여는 소리이자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울림이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종소리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42년 태평양전쟁이 격화되자 일제는 군수물자 확보를 명목으로 전국 교회와 사찰의 종을 강제로 수거하였다. 

황등교회의 첫 번째 종도 결국 일본에 헌납되었다. 당시에는 놋그릇과 수저까지 강제로 거둬가던 시절이었다. 교인들에게 종의 상실은 단지 물건 하나를 빼앗긴 일이 아니었다. 신앙의 자유와 공동체 정신까지 억압당한 식민지 시대의 깊은 상처였다. 

광복 이후 황등교회는 다시 종소리를 되찾고자 했다. 1946년 8월 21일, 황등교회 설립자인 계원식 장로가 새 종을 기증하면서 두 번째 종이 설치되었다. 

해방 후 다시 울려 퍼진 종소리는 자유와 회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 종은 이미 금이 간 상태였다. 

종 아래 부분에 균열이 생겨 맑은 소리를 내지 못했고, 더 이상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끝부분에 구멍까지 뚫어야 했다. 완전하지 못한 종소리는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던 사회 혼란과 분단의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현재 남아 있는 세 번째 종은 미국 교회의 사랑과 한국교회의 아픔이 함께 담긴 종이다. 이 종이 황등교회에 오게 된 데에는 계일승 목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계일승 목사는 황등교회 설립자인 계원식 장로의 아들이자 당시 황등교회 담임목사였다. 

그는 1949년 미국 유니온 신학교 박사과정 유학 중 버지니아주 리스버그 제일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당시 리스버그 제일교회는 교회당을 다른 교회에 매각하려던 중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계일승 목사는 황등교회의 형편과 한국교회의 어려운 현실을 설명하며 종 기증을 요청하였다. 

미국 교회는 전쟁과 식민지의 상처 속에 있는 한국교회의 사정을 깊이 이해했고, 오래 사용하던 종을 황등교회에 기증하기로 결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태평양 건너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운송 비용까지 부담하였다. 국경과 언어를 넘어 이어진 신앙의 연대와 사랑이 담긴 결정이었다.

계일승 목사는 공부를 마친 뒤 1950년 1월 16일 종과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귀국 도중 전쟁 소식을 접한 배는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일본으로 향했다. 

계일승 목사는 일본 도쿄에 머물며 극동사령부 통역관으로 근무하게 되었고, 종 역시 일본에 보관되었다. 그 무렵 황등교회 역시 전쟁의 비극을 피할 수 없었다. 

북한군 점령 시기 교회와 지역사회는 큰 피해를 입었고 주민 18명이 희생되었다. 계일승 목사의 아내 안인호 사모도 순교하였으며, 변영수 장로 역시 피난길에서 희생되었다. 교회 공동체는 깊은 상처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다.

전쟁 중이던 1951년 6월 10일, 마침내 종이 부산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황등교회에 전해졌다. 

교인들은 군용트럭을 어렵게 마련해 부산까지 내려가 종을 직접 가져왔다. 기중기도 없
던 시절이었기에 교인들은 도르래와 밧줄만으로 종을 종탑 위로 끌어올렸다. 장정들이 온 힘을 다해 세운 종은 다시 황등 들녘에 희망의 울림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 뒤 깨진 두 번째 종은 인근 중리교회에 기증되었고, 미국에서 건너온 세 번째 종이 황등교회의 새로운 종이 되었다. 

이후에도 종은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종을 지탱하던 쇠 구조물이 부러지기도 했고, 종을 치는 추가 떨어지는 사고도 있었다. 1998년 6월에는 노후된 철골 종탑을 교체하기 위해 종을 다시 내려야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교인들은 힘을 모아 종을 지켜냈다. 특히 종탑을 이전할 당시에는 기계 장비가 부족해 밧줄로 조금씩 끌며 이동시켰다고 한다. 사람의 걸음처럼 움직였다고 해서 “종탑이 걸어왔다”는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1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황등교회의 사랑의 종은 한결같이 예배 시간을 알리고 공동체를 깨우는 소리를 내고 있다. 그 울림 속에는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광복의 감격, 한국전쟁의 비극, 그리고 세계 교회의 사랑이 함께 담겨 있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황등교회의 사랑의 종은 2017년 6월 13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지정 한국기독교사적 제33호로 지정되었으며, 익산노회 사적지 제4호로도 보존되고 있다. 

이어 2021년 6월 29일에는 익산시로부터 ‘자랑스러운 익산만의 숨은 보석’ 인증패를 받으며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오늘날 도시에서는 소음 문제로 교회 종소리를 듣기 어려워졌지만, 황등교회는 여전히 새벽과 주일이면 종을 울린다. 

오래된 종에서 퍼져 나오는 맑은 소리는 단순한 금속의 울림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의 신앙과 희망, 그리고 황등 공동체의 기억이 함께 살아 숨 쉬는 역사 그 자체이다. 

예로부터 황등은 교통과 상업이 발달한 고장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황등교회가 있었다. 

교회의 종소리는 단순한 예배의 신호를 넘어 시대의 아픔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었다. 140년 세월을 넘어 오늘까지 이어지는 그 울림은 지금도 황등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마스터 기자  i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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