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오석원 익산원예농협 상임이사 | | ⓒ 익산신문 |
최근 당정이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으로 농협중앙회장 자격을 비조합원 즉 정치인까지 허용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통과를 기다리면서 농협과 정치권, 농민단체들까지 갑론을박이다.
이러한 찬반논의는 단순한 제도 개선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협동조합의 근간을 이루는 ‘조합원 주권’ 이라는 원칙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1961년 농협중앙회 설립 당시 농협중앙회장이 관치 형태로 운영되다가 조합장 대의원 간접선거에 이어 2024년 회장선거에서 겨우 조합장 직선제로 바뀌면서 정체성을 향해 한걸음 더 다가가는구나 싶었는데 이제 다시 정치의 장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겉으로는 문호를 넓히고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정당성과 대표성의 균형을 허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이나 정치 조직과 다르다. 출자하고 이용하며 책임을 함께 지는 조합원들이 주인이 되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중앙회장은 단순한 관리자나 권력자가 아니라, 농민의 이해와 삶을 대변하는 상징적 존재여야 한다. 따라서 조합원이 아닌 자에게 최고 대표직의 문을 연다는 것은, ‘주인이 아닌 자에게 주인의 역할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능력 있는 외부 인사의 참여를 통해 조직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높이자는 주장도 일견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그 논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전제가 필요하다.
바로 조직의 정체성과 운영 원리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자격의 문턱을 허물어버린 채 결과만을 기대하는 것은, 뿌리를 흔들면서 열매를 더 맺으려는 것과 같은 모순이다.
“名不正則言不順”,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서지 않는다는 고사성어는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짚는다. 조합원이 아닌 사람이 조합을 대표한다면, 그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선거를 통해 뽑혔다고 해서 모든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성은 절차에서 나오지만, 정당성은 자격에서 출발한다. 이 둘이 어긋나는 순간, 조직은 필연적으로 갈등과 불신에 직면하게 된다.
더욱이 농협은 단순한 경제 조직이 아니라, 농민의 삶과 직결된 공동체다. 외부인사의 유입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결합될 경우, 협동조합은 본연의 목적을 잃고 또 다른 권력투쟁의 장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이미 여러 조직에서 반복되어온 역사적 경험이기도 하다. 지금도 일부 지역농협 조합장 선거에서 무늬만 조합원인 사람들이 정치의 기술을 발휘하여 당선되어 협동조합을 정치조직화 하는 사례들은 개선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개혁이 옳은 것은 아니다. 특히 정체성을 훼손하는 개혁은 혁신이 아니라 해체에 가깝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문을 무조건 넓히는 것이 아니라, 왜 그 문이 존재했는지를 되묻는 일이다. 자격을 완화하기 전에, 그 자격이 지켜왔던 가치와 의미를 먼저 성찰해야 한다.
현재 농협의 법과 제도는 잘 짜여있다. 다만, 운영하는 당사자들의 부도덕한 운영 때문에 뭇매를 맞으면서 만신창이가 되었을 뿐이다.
개혁을 빌미삼아 주인이 아닌 자에게 주인의 자리를 맡기는 순간, 그 조직은 더 이상 자치의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외형만 남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농협이 진정으로 농민의 조직으로 남고자 한다면, 출마자격 논의는 ‘개방’이 아니라 ‘정당성’이라는 기준 위에서 다시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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