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태현 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 | ⓒ 익산신문 |
올해는 병오년(丙午年) ‘말의 해’이다. 그냥 말의 해가 아니라 ‘붉은 말의 해’라고 한다.
옛말에 ‘순리대로’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들은 억지로 거스르려 하지 말고, 물처럼 흐르는 대로 사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순리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사회 규범이고 세상 이치의 표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法)이라는 한 자를 살펴보면 물 수(水)에 갈 거(去)가 합쳐진 글자다. 물이 흐르는 현상이 곧 법인 것이다.
그래서 글자를 물 흐름의 현상을 토대로 정의한 것은 물 흐름의 원리가 곧 이치이고 순리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이치와 순리에 따라 물 흐르듯 순응하며 산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아주 넓은 저수지에 말과 소를 동시에 넣으면 둘 다 헤엄쳐서 물 밖으로 잘 나온다. 특히 말은 헤엄을 잘해 소의 두 배 속도인데 네발 달린 짐승이 헤엄을 이렇게 잘할 수 있을까 놀랄 정도다.
그런데 장마철에 물이 불어나고 유속이 빠른 강에 말과 소가 물에 빠져 떠내려가면 소는 살아서 나오는데, 반해 말은 익사한다고 한다.
말은 헤엄을 잘 치지만 강한 물살을 이겨내려고 물을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려고만 한다. 즉 말은 1m 전진하다가 물살에 밀려서 다시 1m 후퇴 하기를 반복한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힘이 빠져 허우적대다가 지쳐서 물을 많이 먹고 익사하고 만다.
반대로 소는 말처럼 물살을 거슬러서 헤엄치려 하지 않는다. 다만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떠내려간다. 그렇게 물살을 등지고 떠내려가다가 보면 조금씩 강가에 가까워지고, 나중에는 얕은 모래밭이나 물가에 이르러 밖으로 걸어 나오게 된다.
이처럼 헤엄을 두 배나 잘하는 말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다 힘이 빠져 익사하고, 헤엄이 둔한 소는 물살에 편승해서 조금씩 강가로 나와 목숨을 건진다.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사자성어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이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 逆天者亡)’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자는 살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뜻이다.
‘우생마사’는 ‘소는 살아남지만, 말은 죽는다.’라는 뜻인데 왜 그럴까? 말은 힘이 세다. 그래서 물을 거슬러 가려고 한다. 그러나 말이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물살을 이길 수는 없다. 결국 역행 하려고 몸부림치다 끝내는 탈진해서 죽고 만다.
반면에 소는 물이 불어나면 그냥 둥둥 떠다닌다. 그냥 물이 흘러가는 대로 떠내려간다. 소는 물을 이기려고 하지 않고 물에 순응한다. 그래서 살아남는 것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욕심이 생기고, 그 과욕이 넘쳐서 파생되는 문제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순리의 법칙을 무시하고, 결국 일이 터져 무리하게 수습하는데 오히려 더 큰 불상사를 일으키곤 한다. 때로는 그 과욕이 몸을 다치게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렇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아무리 애써도 일이 꼬이기만 할 때가 있다. 인생이 괴롭고 고단한 것은, 이처럼 순리대로 살지 않고 역행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만을 믿고 세찬 물살을 이겨내며 앞으로만 나아가는 말이 되지 말고, 물이 흐르는 방향에 몸을 맡기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소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변화는 거저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의 산물이다. 역경의 순간에 변화의 흐름을 거스르면 힘든 인생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런 시기에는 흐름에 순응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현명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이다.
새해가 밝은지 어느새 두 달째 접어들었다, 지금부터는 요란한 출발보다는 조용하고 충분한 준비로 하루와 한 달, 일 년을 시작 해보자.
그리하면 내일은 분명히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고 세상이 밝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성급한 마음으로 모래성을 쌓지 말고 느리게라도 반석 위에 성을 쌓도록 하는 마음가짐으로 출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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