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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은 철도의 도시다. 호남선과 전라선이 교차하고, 장항선과 새만금선까지 이어지는 전국 유일의 철도 결절점(結節點)이다. 그럼에도 최근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26~2035)에서 익산은 점점 ‘사라지는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
이 논의 과정에서 거론된 남서울·청주·전주·여수의 한반도 KTX 직선화 구상은 그 단적인 사례다. 110년 역사의 철도 허브를 비켜 간 직선, 과연 그것이 국토 균형발전 전략이라 할 수 있을까.
철도는 한반도 지도 위에 자를 대고 긋는 선이 아니다. 철도는 결절점에서 기능을 만들어내고, 그 중심으로 도시와 산업을 키운다.
익산은 일제강점기 토지 수탈 철도의 상처 위에 해방 이후 국가 기간철도망이 중첩되며 형성된 대표적 허브다. 이 구조를 무시한 채 ‘더 빠른 직선’만을 앞세우는 것은 철도를 단순한 교통수단으로 축소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다.
서울에서 청주를 거쳐 전주, 여수로 이어지는 직선화 구상은 표면적으로는 시간 단축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전북 내륙 철도체계를 공동화시키는 위험이 숨어 있다.
익산을 우회하는 순간, 호남선과 전라선을 잇는 핵심 연결축은 끊기고 전북은 다시 통과 지역으로 전락한다. 이는 국가균형발전이 아니라 또 다른 지역 파괴의 시작이다.
익산역은 이미 수치로 증명된 철도 허브다. 코레일 통계에 따르면 익산역 이용객이 작년 871만 명으로 전망되며 전북권 최다 수준이다. 하루 평균 2만 3천명 이상이 호남선과 전라선을 오가며 환승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 거대한 실제 수요를 외면한 채 지도 위 직선 하나로 국토를 재단하려 한다. 이용자도, 물류도, 역사도 무시한 철도 정책은 균형 발전이 아니라 지역 소외의 다름 아니다. 익산을 지우는 순간, 전북 전체가 철도 지도에서 밀려난다.
전라선 KTX 신설 논쟁의 쟁점은 이미 국가계획 속에 드러나 있다. 산악지형의 굴곡 많은 선형과 저속 구간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진단은 사실이지만, 이를 이유로 익산을 배제하는 해법은 국토 균형 발전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이미 제5차 국토종합계획과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는 기존 축의 고속화·효율화가 우선이라는 방향이 담겨 있다.
불필요한 신규 노선 신설 계획안은 인구 감소 상황에서 막대한 예산 낭비와 지역 간 갈등만 키울 뿐이다. 상생 해법은 또 다른 노선을 긋는 데 있지 않다.
익산을 중심으로 전라선을 직선화·고속화해 전북과 전남을 하나의 생활·경제권으로 묶는 것이 가장 현실적·합리적인 국가정책이다.
더 큰 문제는 철도 정책이 여전히 여객 중심 사고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새만금과 군산항을 국제 물류 거점으로 키우겠다고 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내륙 철도 물류 허브에는 인색하다.
익산은 철도 화물, 산업 물류, 항만 연계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도시다. 이 기능을 외면한 직선 노선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익산 철도는 과거의 분기점이 아니라 미래의 거점지다. 남서울·익산·여수(목포)로 이어지는 남해 산업축, 익산·새만금·군산항으로 연결되는 서해 국제 물류축, 익산·대전·서울로 이어지는 국가 행정·교통축의 중심에 익산이 있다.
남북통일 후에는 호남권 유라시아 철도의 시발역이 되어야 한다. 철도 허브를 제거한 직선은 구조를 무너뜨린다. 철도 국토계획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익산을 지운 철도는 결국 국토의 균형도 함께 지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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