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유은미 호원대학교 공연미디어학부 교수 | | ⓒ 익산신문 |
CES 2026 무대에 등장한 현대자동차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기술 진보의 방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동작을 정교하게 모사하고, 반복과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기계의 등장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장면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간의 노동이 경제적 가치의 중심이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변화는 공장과 건설 현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이미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든다. 지브리풍 영상과 같은 창의적 미디어 콘텐츠가 몇 줄의 명령어로 생성되는 시대에, 예술과 창작 역시 더 이상 인간만의 전유물이라 말하기 어려워졌다.
‘잘 만드는 능력’, ‘빠르게 생산하는 능력’만으로는 인간이 경쟁력을 주장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바뀐다. 이 시대에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까.
과거 사회는 조직을 중심으로 개인의 가치를 평가했다.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어떤 직급에 있는지가 한 사람의 삶을 설명해 주었다. 조직에서의 경험은 곧 사회적 신뢰였고, 안정된 직장은 인생의 목표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AI 시대는 이 공식을 무너뜨린다. 조직은 언제든 대체 가능해지고, 직무는 자동화된다. 남는 것은 조직의 이름이 아니라 개인이 축적해 온 삶의 경험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디에 소속되어 있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경험하며 살아왔는가’다. 실패를 감당해 본 경험,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 애쓴 시간, 낯선 환경에서 스스로를 지켜낸 기억, 누군가를 돌보고 책임져 본 순간들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만든다.
이런 경험은 이력서의 한 줄로 요약되기 어렵지만, 위기의 순간에 개인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자산이 된다.
개인의 사회적 자립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더 이상 평생직장이 삶을 보장해 주지 않는 시대, 개인은 스스로의 삶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기술이 아니라 ‘나만의 경험’과 ‘인간관계’다.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만의 경험이 쌓인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기계는 효율을 제공할 수 있지만, 삶의 방향까지 대신 정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AI 시대일수록 사람은 자기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흔들리는 기준 속에서도 자신을 긍정적인 가치로 세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강한 바람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외부의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는 내면의 기준을 가진 사람만이 변화의 속도 앞에서 중심을 지킬 수 있다. 자기 이해, 자기 성찰, 그리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태도는 그 어떤 기술보다 오래가는 경쟁력이다.
인간관계 또한 달라져야 한다. 연결은 넘쳐나지만, 관계는 가벼워진 시대다. AI 시대에 인간관계의 가치는 오히려 더 커진다. 정보와 이익을 중심으로 한 관계가 아니라, 진솔함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가 삶의 안전망이 된다.
빠른 말보다 신중한 태도, 보여주기식 친밀감보다 진중한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이를 만들어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AI는 인간의 일을 대신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까지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조직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로 남는 삶. 기술의 속도에 휩쓸리기보다, 자신만의 리듬으로 성장하는 삶. 어쩌면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지 모른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