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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해 선생은 1874년 전북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낙언(樂彦), 호는 일광(一狂)이며 기우만과 최익현의 문하에서 수학했습니다.
1906년 봄 태인으로 최익현을 찾아가 영남의 민심 동향과 지사들의 반응을 보고하고 의병활동에 참여했으며 영남과 호남의 의병이 함께 봉기할 것을 통고하기 위해 영남으로 떠나 19일 만에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후 최익현의 의거 소식에 모여든 지사와 포수는 지방관아의 무기를 접수하고 군량을 확보해 의병대 병력은 800여 명에 이르게 됐으며 6월 5일 최익현 의병대의 소모장 겸 중군장으로 태인을 출발해 6월 6일에 순창 구암사로 진을 옮기고, 이튿날 순창성 밖에서 일본군 10여 명을 사살하고 전열을 정비해 6월 8일에는 곡성으로 진출했습니다.
6월 19일 순창으로 회군해 포진 중, 6월 20일 일본군과 합세한 전주·남원의 진위대와 충돌해 총탄을 맞고 33세의 나이에 전사했습니다.
정시해 선생은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됐으며, 국가보훈부에서는 애국지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3년 정시해 충효비를 현충시설로 지정했습니다.
※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4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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