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송태규 시인, 더불어민주당 익산시 갑 지역위원장 | | ⓒ 익산신문 |
마감이 코앞에 닥치면 손은 빨라지지만, 문장은 자꾸 흐트러진다. 서둘러 결론을 내리려 할수록 생각은 얕아진다. 조급함에 등 떠밀려 고쳐 쓴 문장은 처음보다 더 낯설어지기 일쑤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답이 늦는다는 이유로 재촉한 말 한마디가 공들여 쌓은 관계를 어긋나게 만든다. 마음만 앞선 해명은 오히려 오해의 불씨를 키운다. 급한 마음은 늘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게 한다.
그럴 때마다 오래된 속담 하나가 따라온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이 말은 단순히 느리게 행동하라는 훈계가 아니다. 속도에 집착하는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철학적 권고에 가깝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에만 온 신경을 쏟으면 시야는 터널처럼 좁아진다.
직선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조급함은 지혜의 가장 오래된 적이며 우리는 그 적에게 너무 자주 자리를 내어주곤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작품 ‘월든’에 “나는 서두르지 않기 위해 숲으로 갔다.”고 썼다.
그처럼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몇 해 전 나는 시내를 벗어나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거기에서 ‘돌아감’의 미학을 온몸으로 배우고 있다.
예전 같으면 승용차로 달려갔을 길을 이제는 버스를 타고 돌아간다. 처음에는 정류장마다 서는 버스가 답답해 시계를 몇 번이나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느릿하게 움직이는 버스 창밖으로 새로운 풍경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계절마다 논밭의 색이 바뀐다. 차창의 이슬이 햇살에 부서진다. 직선의 속도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선물이다.
어느 날은 마감이 풀리지 않아 머리를 싸매다가 일부러 두어 정거장 전에서 내려 걷기도 한다. 직선으로 달릴 때는 가물었던 문장의 실마리가 멀리 돌아가는 발걸음 끝에서 소낙비처럼 쏟아지기도 한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생략해버렸던 그 ‘우회의 시간’들이 사실은 내 글과 삶을 지탱하는 가장 비옥한 토양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는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다. 빠름이 늘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속도를 낮추고 한 걸음 물러설 때 비로소 길 전체가 보인다. 빠르게 목적지에 닿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며 생각의 근육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이다.
오래된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목이 타들어 가듯 급한 나그네가 우물가에 도착해 두레박을 끌어올린다. 차가운 물을 단숨에 들이켜려는 순간, 곁에 있던 처자가 조용히 버드나뭇잎 하나를 띄워준다.
급히 마시면 탈이 난다는 배려였다. 물은 그대로였지만, 잎 하나가 나그네의 숨을 고르게 하고 속도를 늦추게 했다.
이 장면은 ‘돌아감’의 본질을 보여준다. 돌아간다는 것은 길을 포기하거나 지체하는 일이 아니다. 몸과 마음의 속도를 맞추는 일이다.
글쓰기에서도 버드나뭇잎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단숨에 써 내려간 문장보다는 한 번 묵히고 다시 읽으며 다듬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글의 향기가 깊어지기 때문이다. 성급한 문장은 독자의 마음을 울리지 못하고 급하게 낸 결론은 여운을 남기지 못한다.
이제 또 한 해가 저문다. 얼마나 빨리 왔는지를 따지기보다 무엇을 놓치고 지나왔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서두르다 미처 살피지 못한 얼굴들, 급히 넘겨버린 말들, 속도를 핑계로 미뤄두었던 마음을 조용히 떠올린다.
새해에는 조금 더 늦게 가도 좋겠다. 돌아가는 길을 택할 줄 아는 용기만 있다면 삶은 언제든 다시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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