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삼식 (자)이리청과 공동대표 | | ⓒ 익산신문 |
1998년 한국축구에 이른바 오대영 굴욕을 안겨 준 네덜란드였다. 그 수치적 인연이었던 적장 거스 히딩크를 2002월드컵 개최 전략으로 영입하고 보란 듯이 성공하여 변방의 한국축구를 4강에 올려놓게 되는 등 반전을 노린 인연의 결실로 삼았다.
그의 나라 네덜란드가 오는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 시나리오에서 우리와 같은 조로 예상되어 관심이다. 우리와는 하멜의 표류와 6.25 참전으로 역사적 인연이 있었다.
그런데 하멜은 조선 조정에 천대를 받고 일본으로 탈출하여 나름 공헌을 한 모양이다.
일본은 당시 강국 네덜란드 상선들의 표류자들을 잘 대우하고 활용하여 서양 문명을 처음 접하고 ‘난학’이라 하여 의술 등 엄청난 지식을 습득하였고 범선까지 만들어 낼 정도였고 그를 바탕으로 해군강국이 되어 결국 근대화에 성공하는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식민지 확장에 뛰어든다.
네덜란드는 당시 대양 항해가 가능한 범선 건조 능력을 바탕으로 스페인 포르투갈 대영제국을 넘어 해상 강국이 되었고 수도 암스테르담은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산실이 되었으며 여세를 몰아 신대륙 탐험의 결과 암스테르담을 모방한 지금의 자본주의 초강국 미국을 가늠하는 실질적 수도 뉴욕을 개척하게 된다.
방앗간에 불과했던 풍차를 이용, 대형 목재를 자를 수 있는 기계톱을 만들어 대형 범선 건조가 쉬워지자 당연히 세계 개척에 나섰고 급기야 신항로를 찾아 후추 등 귀중품을 팔아 이익을 챙기려는 선박에 대한 일반인들의 투자 붐이 일고 그 투자증서인 주식을 매매할 증권거래소를 짓게 되면서 종국에 자본주의의 맹아로 역사에 기록되게 된 것이다.
영국은 흑사병으로 인구가 급감하자 양 목축이 성행하여 양모를 네덜란드를 통해 수출하다가 직물을 만들기 위해 방적 기술을 네덜란드로부터 수입하고 기술자들을 모은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런던에 백화점 등 상업 성행을 들 수 있는데 당시 카톨릭과 대립에서 승리한 탓에 카톨릭 영지와 영토를 사들인 귀족들이 런던으로 진출하는 바람에 그 부인들이 사치를 즐김으로써 고급 상품시장이 형성되어 그를 계기로 런던이 상업 도시로 급성장하게 된다.
금융중심도시 암스테르담과 상업도시 런던으로 상징되는 두 나라가 번갈아 소유했던 도시 뉴욕이 만들어져 세계 자본주의의 강국인 미국을 탄생시킨 셈이다.
네덜란드는 튤립 버블 사건으로도 유명한데 튤립 한 송이가 금보다 비싸게 거래되다가 공급폭증으로 투자는 다 거품이 되고 만다.
자본주의의 부침을 다 경험해 본 나라가 네덜란드이다. 런던과 암스테르담이 강력한 자본주의 개척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공통점은 두 나라가 공히 종교의 자유 즉 카톨릭 세력권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
종교의 자유가 자본주의를 부흥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일본이 네덜란드 상인들을 보호하고 교류한 것도 당시 일본이 거부했던 기독교 전파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네덜란드는 중국과도 인연이 되는데 현재 중일 관계 악화 요인인 대만은 네덜란드와 일본의 식민지였다)
종교의 자유 외에 한 축으로 대형 선박 건조 능력을 가지고 자본주의를 탄생시켜 후에 자본주의 강국 미국, 일본을 만든 셈인데 이 점에서 지금의 우리나라도 흡사하다.
우리나라도 종교인은 많지만 종교간 마찰이 거의 없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점은 우리의 경제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미국이 부러워하는 조선능력이 있지 않은가.
우리도 영국처럼 방적기가 24시간 돌아가던 나라였던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강국 대한민국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히딩크 사단의 유상철이 이강인으로 이영표, 박지성이 손흥민으로 대를 잇고 박항서가 베트남 축구로 베트남과의 국가적 악연을 희석시켰듯이 인연의 파급과 반전을 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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