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한승진 황등중 교사 | | ⓒ 익산신문 |
요즘 학교 교육을 보면, 교육이 점점 기술처럼 되어간다는 느낌이다. AI, 코딩, 데이터 리터러시 같은 단어들이 교실을 가득 채운다. 물론 시대가 변했으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이 빠진 지식은 칼날과 같다. 예리하지만 따뜻하지 않다. 지식을 쌓는 일보다 더 시급한 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다.
요즘 아이들은 지식에 익숙하고, 감정엔 서툴다. 정보는 넘치지만,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일은 줄었다. 친구의 말을 듣는 대신 스마트폰 알림에 더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말보다 메시지, 마음보다 표정 없는 이모티콘으로 살아간다.
공감의 결핍은 교실의 작은 싸움에서부터, 사회의 큰 갈등까지 이어진다. 한쪽은 “내가 옳다”고 외치고, 다른 쪽은 “너는 틀렸다”라고 맞선다. 결국 남는 건 상처뿐이다.
지식으로는 세상을 설명할 수 있어도, 공감 없이 세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의 한 대목이 실려 있다. 모모는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아이가 아니다. 하지만 모모에겐 “귀 기울여 들어주는 재주”가 있었다.
그녀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상대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었다. 그러면 놀랍게도 상대는 스스로 해답을 찾아냈다.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지금 우리 교육에 필요한 건 바로 그 ‘모모의 귀’ 아닐까. 아이들은 정답을 듣기보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원한다. 공감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그게 진짜 교육의 시작이다.
지금은 IQ보다 EQ, 그리고 SQ가 중요한 시대이다. 예전엔 IQ가 높으면 성공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사람을 움직이는 건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다.
하버드대에서 수십 년간 성공적인 인생을 연구한 결과가 있다. 성공을 결정짓는 요인 중 IQ의 비율은 20%에 불과했다. 나머지 80%는 EQ, 즉 감성지능과 대인관계 능력, 공감능력 등이 차지했다.
감성지능(EQ)은 단순히 감정이 풍부하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며, 그 감정에 적절히 반응할 수 있는 힘이다. 이건 배워서 익힐 수 있다. 하지만 시험 점수로는 평가할 수 없다.
요즘은 여기에 SQ, 즉 사회적 지능(Social Quotient)이라는 개념도 더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조율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아가는 능력이다.
결국 EQ와 SQ는 ‘공감의 근육’이다. 지식이 두뇌의 근육이라면, 공감은 마음의 근육이다. 지식이 깊어질수록 마음도 넓어져야 한다.
필자는 공감하는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두 명의 선생님이 계셨다. 한 분은 서울대 출신으로, 논리적이고 완벽주의자였다. “왜 이걸 모르냐?” “그건 틀렸다.” 수업은 정확했지만, 마음은 멀었다. 학생들은 그 선생님을 두려워했다.
다른 한 분은 무명 대학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우리에게 늘 물었다. “힘들지?” “어제 일은 괜찮았어?” 그분은 공부 못하는 아이의 사정을 들어주고, 불량한 아이의 눈빛을 읽어냈다. 야단보다 대화를 택했고, 꾸중보다 위로를 건넸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 반은 성적도, 분위기도 최고였다.
그때 필자는 깨달았다. 공감은 지식보다 더 강력한 교육의 힘이라는 걸. 공감은 마음의 언어다.
공감은 기술이 아니다. ‘상대방 상황에서 생각해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판단이 빠르다. 뉴스는 비난으로 넘치고, SNS는 논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진짜 강한 사람은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이다. 공감은 약함이 아니라, 용기다.
공감은 감정의 소비가 아니라, 관계의 투자다. 지식보다 마음이 앞서야 배움이 완성된다.
요즘 교실에서 아이들이 묻는다. “선생님, 이거 시험에 나와요?” 그 질문은 슬프다. 공부가 삶의 도구가 아니라, 점수의 도구가 되어버린 현실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걸 ‘가르치려’ 한다. 하지만 진짜 교육은 ‘함께 느끼는 것’에서 시작된다.
한 아이가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 줄 아는 마음, 친구의 실패를 비웃지 않는 마음, 누군가의 슬픔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마음. 이게 교육이다. 공감은 배움의 시작이자, 사람됨의 완성이다.
지식은 인간을 똑똑하게 만들지만, 공감은 인간을 사람답게 만든다. 교육의 본질은 결국 ‘사람을 배우는 것’이다. 공감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언어다.
이 언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이 언어를 실천하는 사회가 우리가 만들어야 할 다음 세대의 모습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