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태현 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 | ⓒ 익산신문 |
사람은 각자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을 새기며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나온 세월과 생각, 가치관, 심리 상태의 모든 변화 하나하나가 얼굴에 흔적이 남는다.
오랫동안 일정한 정서를 유지한 사람은 표정에 크게 변화가 없다. 그렇지만 항상 초조하고 우울한 사람에게는 불안한 얼굴이 생긴다. 그러기에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의 외모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마의상법’이라는 책에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외모의 형상은 마음에서 생겨난다’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스스로 숨길 수도 있고 드러낼 수도 있고 또 마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숨겨졌던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 산동에 한 조각가가 있었는데, 외모가 아주 잘생긴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요괴나 귀신과 같은 것들을 조각하길 좋아했고, 그의 작품은 모양이 아주 생동감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구매를 해 장사가 잘되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잘 생겼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몰골이 괴상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예전의 자신 모습을 찾고 싶어 두루 유명한 의사들을 찾아다녔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한 사찰에 들르게 되고, 그곳 주지 스님의 충고를 들었다. “내가 당신의 소원을 들어줄 수는 있지만, 대신 조건이 있소. 반드시 각기 다른 모습의 관음상을 여러 개 조각해서 내게 주어야 하오.” 조각가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주저 없이 스님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스님의 조건을 이행하고자 그는 끊임없이 관음보살의 모습과 표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작품 속에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반년이 지난 후 그는 각기 다른 모습의 관음상을 만들어 다시 스님을 찾아갔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거울을 한 번 보시오. 당신의 얼굴은 자비롭고 선량한 것이 마치 관음보살처럼 보입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장중하게 변한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토록 고치고 싶었던 얼굴이 저절로 좋아진 것이다.
사람은 각자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을 새기며 살아간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모든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는 부모가 만들어준 얼굴이지만, 그다음부터는 자신이 얼굴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관상가는 사람의 얼굴상을 보고 그 사람의 인생을 짐작한다. 관상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사람이라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현재 기분과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를 적절히 구분해 낸다. 이것이 연륜이다.
특히 마음이 선함과 악함, 뿔난 것과 기쁨, 불신과 신뢰의 상태는 상대의 얼굴만 보고도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다. 즉 자신이 마음을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말과 행동을 했을 때 순간 움칫하며 적잖이 놀란 적도 한두 번 있었을 것이다.
거울 속의 자신 얼굴을 들여다보라. 주름살은 상관이 없다. 그것은 세월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 모습이 선한 모습인가? 악한 모습인가? 어디가 잘못되었고? 어디가 잘 되었는가? 자신의 얼굴 형상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다. 그렇게 살았기에 그렇게 거울에 비춰지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과거의 흔적이고, 지금 자신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의 결과물이다.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은 아니다.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다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언행을 통해 과거를 살피고, 몸짓을 통해 현재를 알아차린다.
또 그림자처럼 이어지는 품격에서 미래를 기대한다. 그러기에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모든 형상은 마음이 지어낸다. 그게 바로 ‘상유심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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