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태현 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 | ⓒ 익산신문 |
8월은 광복절(8.15)과 국치일(8.29)이 함께 있어 가슴을 뜨겁게 하지만 치욕적이기도 한 달이다.
이 중에 국치일은 대한제국의 치욕적인 날로 꼭 기억해야 할 날이다. 즉, 경술국치(庚戌國恥)는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주권을 빼앗겨 일본 제국에 강제 병합된 날이다.
일본과의 관계는 근래에 와서 위안부 합의 파기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과거사 문제에 간격이 크다.
여기에 일본의 교과서 역사 왜곡,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역사인 군함도의 유네스코 등재와 외교·군사·경제 문제까지 산적해 있다.
식민지 지배 35년간 한국에 대해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통치를 시행하여 국민에게 참혹한 고통을 안긴 것을 필두로, 우리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였음은 물론 사도 광산에서 지옥 같은 강제 노역을 시켰다.
특히,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어로의 교육을 강요했다. 치욕적인 것은 창씨개명으로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꿨다.
또,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파괴하고 일본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고 항일 운동을 탄압하여 저항을 억눌렀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고 학살했다.
1980년대 중국의 덩샤오핑이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사자성어를 들고 나왔었다. 도광양회는 ‘빛을 감춰 밖으로 새 나가지 않도록 하고, 안으로는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1997년 장쩌민은 ‘유소작위(有所作爲)’라며 ‘할 말은 하고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중국이 ‘도광양회’ 외교정책을 편 것은 그 당시 미국에 견줄만한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기의 재능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참고 때를 기다린 것이다. 즉 약자가 모욕을 참고 견디면서 힘을 갈고 닦은 것이다.
이러한 도광양회 전술은 중국이 1980년대 개혁·개방정책을 취하면서 도광양회로 주변국을 중국의 세력 범위 안에 묶어두고 통제하기 위한 대외정책의 뼈대로 삼았다.
이는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력이나 국력이 생길 때까지는 침묵을 지키면서 강대국들의 눈치를 살피고, 전술적으로도 협력하는 외교정책이다.
도광양회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도 나온다. 유비가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식객 노릇을 할 때다.
이때 유비는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몸을 낮추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여 경계심을 풀도록 했다.
천하를 도모하려는 큰 뜻이 없음을 가장하기 위해 자기의 재능을 숨기고 속으로 실력을 기르는 계략을 편 것이다.
어느 날 조조는 유비를 불렀다. “지금, 이 시대에 영웅이 될 만한 사람은 그대와 나, 둘 뿐이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유비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라는 듯이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뜨리며 황송한 듯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이게 도광양회다.
전 세계가 미국의 관세정책에 놀라고 대책을 세우느라 골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번 관세 파고를 일단 넘겼지만, 앞으로 산 넘어 산이다. 작년 기준 GDP의 2.6%인 국방 지출을 3.8%로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이나 야당도 개인의 이익이나 당리당략보다 국가와 국민을 최상위로 생각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