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송태규 시인 | | ⓒ 익산신문 |
연륜을 쌓아가며 나이테를 더해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론 “나잇값도 못 한다”, “나잇살이나 먹고도 저 모양이다”같은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물건은 세월을 견디며 남아 있을 때, ‘골동품’이라는 이름으로 품위와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 안에 담긴 서사와 시간이 빚은 아름다움 때문이다.
하찮아 보이는 일도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이어간다면 노년에 겪는 삶의 고단함조차 새로운 의미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70~80대 노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화제가 되었다. 모든 환경을 20년 전으로 재현한 공간에서 노인 여덟 명이 일주일간 생활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체험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청소, 요리, 설거지 등을 스스로 해냈다. 단지 일주일이었지만, 참가자 전원의 시력·청력은 물론 인지 기능과 신체 능력도 50대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이 실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신체와 정신의 시계는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노년이 되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바로 ‘노인의 사고(四苦)’다. 빈고(貧苦) - 가난의 고통, 병고(病苦) - 병의 고통, 고독고(孤獨苦) - 외로움의 고통, 그리고 무위고(無爲苦) - 할 일 없음의 고통.
이 가운데 가장 날카롭게 마음을 파고드는 건 단연 무위고다. 하루 이틀도 아닌 긴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다 보면 지루함을 넘어 허무함이 스며든다. 소득은 끊기고 몸은 둔해지며 관계도 점차 줄어든다.
그렇게 사람은 서서히 시들어간다. 마음의 맥박이 희미해지고 살아 있다는 감각조차 무뎌진다.
결국 노인을 괴롭히는 고통은 ‘할 일 없음’에서 출발한다. ‘할 일이 없다’는 건 단순한 지루함이 아니다. 그건 존재의 무게가 사라지는 일이다.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사람은 늙는 것이 아니라 저물어간다.
그래서 나는 매일 걷는다. 걷다 보면 달리게 되고 달리다 보면 글을 쓰게 된다. 그리고 글을 쓰고 나면 어느새 ‘내가 살아 있구나’ 하는 감각이 되살아난다.
120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나는 내게 묻는다. “너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그 일이 남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가 아니라 너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인생의 목록에 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버킷리스트라 부른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희망적인 표현을 좋아한다. 바로 ‘드림 리스트’다.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남아 있다면,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나는 매일 달리며 드림 리스트를 되새긴다. 나이를 먹으며 글을 쓴다는 건 꿈의 목록을 일기처럼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늙는다는 건 그저 한 걸음씩 조용히 삶을 내려놓는 과정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말한다. 노년이 길어질수록 외롭고 두렵고 우울하다고. 장수가 때론 짐이 되기도 한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이가 들수록 허세는 자연스럽게 벗겨진다. 과거의 지위나 명함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저 ‘나’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남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되고 어느 순간 못나고 서툰 나 자신조차도 안아주게 된다. 그 편안한 마음. 나이가 든다는 건 젊을 땐 미처 몰랐던, 세월이 내게 주는 가장 커다란 선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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