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한승진 황등중 교사 | | ⓒ 익산신문 |
인생은 정적인 그림이 아니라, 끝없이 물결치는 풍경이다. 해가 비치다가도 금세 먹구름이 끼고, 잔잔하던 물결도 어느 순간 거센 파도가 된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외부의 바람과 비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견디는 힘, 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내면의 기둥을 세울 수 있다.
집을 짓는 이가 폭풍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기초를 단단히 다질 수 있듯, 인간도 흔들림 없는 마음을 짓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내면의 바위, 삶의 돛, 믿음의 나침반. 이름은 달라도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같다.
중심을 지키는 것. “물결이 아무리 세차게 밀려와도 바위는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킨다.” 이 오래된 문장은 어느 한 작가의 소유라기보다, 수천 년 인류가 경험 속에서 길어 올린 문명의 문장이다.
삶은 끊임없이 우리를 흔든다. 상실, 실패, 질병, 오해… 때로는 나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날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고요한 동요 속에서도 한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글귀이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그러나 그 바늘이 떨리는 한, 우리는 그 방향을 믿어도 좋다.” 살다 보면 자기 삶의 무게가 자신에게만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러나 도종환 시인이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 노래했듯,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바람과 비에 젖으며 피어난다.” 그렇다. 그 흔들림 속에서 줄기를 곧게 세우는 꽃이 있다.
흔들리지 않는 삶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흔들리느냐, 그 흔들림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다시 뿌리를 내리는가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비로소 단단해진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마음은 억지로 잡으려 하면 달아나고, 흘러가게 두면 머문다.”라고 했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자연을 이해하는 일과 비슷하다.
고난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고통을 견딘다는 것이 아니다. 그 길 위에서 삶의 본질을 더 깊이 마주하게 된다는 뜻이다.
『삼국지』에서 유래한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처럼,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나서야 비로소 하늘의 뜻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삶이 전부 우리 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이런 길은 때로는 외롭고 고달프다. 그러나 그 의미와 가치는 깊고 오묘하다.
“한 가닥 불빛도 먼 밤을 밝힌다.” 『채근담』. 바로 그 한 가닥의 마음, 한 줌의 의지, 그것이 우리 삶을 앞으로 끌고 가는 힘이 된다. 어둠이 길다고 해서 아침이 오지 않는 건 아니다.
삶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이다. 그 여정의 가장 깊은 의미는, 그 길 위에서 서로를 기다리고, 손을 내밀고, 때로는 같이 넘어지고 일어나는 데 있다.
우리는 각자의 배를 타고, 험한 파도와 바람을 지나, 어떤 날은 휘청거리면서도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순례자들이다. 그 여정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길의 끝을 내다보는 확신보다는, 오늘 내딛는 이 한 걸음이 진실하다는 믿음이다.
삶은 완성된 건축물이 아니다. 오히려 날마다 다시 짓는 집, 매 순간 새로이 놓는 마음의 기초다. 흔들림이 지나간 자리마다,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깊어진다.
마치 비에 젖은 흙이 더 단단히 굳듯이.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바람 속에 서 있다면,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기억하자. 그 바람은 우리를 쓰러뜨리기 위해 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깊게 뿌리내리도록, 더 멀리 보도록, 우리를 흔들며 가르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