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송태규 ‘직진도 충분히 아름답다’ 저자 | | ⓒ 익산신문 |
지난해 1월 초, 참 힘들게 손녀가 세상에 나왔다. 우리 가족이 되려고 얼마나 애썼던지 결국 쇄골이 부러지면서 그렇게 품에 안겼다.
“얼마나 아팠을까, 부디 탈 없이 빨리 아물어라.” 아기를 품에 안을 때마다 귀에 기도를 속삭였다. 노심초사하던 시간이 지나며, 그 여린 생명이 무사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손녀를 아기차에 태우고 달렸다. 좋은 사람과 같은 목적지를 함께 가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그게 가족과 하는 운동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운동이라는 공통 주제를 통해 소통이 원활해지고 서로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는 가족을 더욱 끈끈하게 만드는 접착제이다. 더불어 신체활동을 넘어 유대감을 강화하고 행복과 건강을 증진하는 윤활유다.
지난 일요일에 다녀온 마라톤 대회는 단순한 행사를 넘어선 특별한 경험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과 싸우고 또 함께 달린 날. 아들 내외는 10km를, 나는 손녀를 태운 아기차를 밀며 5km를 완주했다.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양팔을 자유롭게 흔들며 리듬을 맞추는 평소와는 달리 아기차를 밀며 달린다는 건, 마치 두 팔이 묶인 채 전력 질주하는 듯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무겁고 조심스러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한 뒤 다가오는 감동을 맛보고 싶었다. 누군가 그랬다. “가족이 함께 흘리는 땀은 서로의 마음을 닦는다.”라고. 함께 달리고 땀을 닦아주는 순간이 행복한 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을 위한 다섯 가지 조건을 이렇게 정했다고 한다. 먹고 살기에 조금 모자란 듯한 재산,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약간 부족한 듯한 외모,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남과 대결해서 한 사람은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지는 체력, 연설했을 때 절반 정도만 박수를 받는 말솜씨.
어느 것 하나 빼놓으면 나머지가 서운할 것 같이 모두 나를 두고 한 말 같다. 너무 완벽하지 않아서 더 인간적이고 그 결핍 때문에 더 노력하게 되는 삶. 넘치지 않고 적당히 부족해야 노력할 이유가 생기고 그럴 때 성장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날의 달리기도 그랬다. 완벽한 몸도, 완벽한 컨디션도 없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책임감과 사랑으로 그 5km를 채워나갈 수 있었다.
손녀는 이제 겨우 15개월. 어느새 세상의 이곳저곳을 궁금해하고, 아기차에 오래 있으면 내려달라고 떼쓰기 일쑤다. 마라톤 당일에도 혹시 울거나 보채지는 않을까 걱정이 컸지만, 얌전했다.
달리는 내내 얼굴을 볼 수 없어 옆에서 뛰는 이들에게 묻곤 했다. “혹시 자고 있나요?” 돌아온 대답은 늘 같았다. “눈 동그랗게 뜨고 있어요. 참 예쁘네요!” 그 말 한마디가 발걸음에 힘을 실었다.
완주 후 시계를 보니 30분이나 걸렸지만, 그것은 숫자가 아닌 감정의 기록증으로 남았다. 더 의미 있었던 진짜 기록은 손녀와 함께한 시간, 함께 호흡하는 순간이었다.
내게 달리기는 시간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채우는 일이다. 아기차에 실린 손녀는 그날 내 삶의 조각 중 가장 소중한 부분이 되었다.
기록보다 기억이 진하게 남고 속도보다 ‘누구와 함께’가 중요하다는 진리를 배웠다. 아기차 안에서 나를 이끈 손녀는 그날 가장 어린 15개월짜리 마라토너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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