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태현 고원공간정보 부회장 · 전 무주부군수 | | ⓒ 익산신문 |
세상을 살아가면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는 가족 다음으로 평생을 같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나 벗을 지칭하는 용어는 한국과 중국, 일본도 각각 다르다. 한국은 친구(親舊), 중국은 펑여우(朋友), 일본은 도모다찌(友達)를 쓴다.
‘붕(朋)’은 봉황이 날 듯 새 떼가 함께 무리 지어 나는 모습이며, ‘우(友)’는 서로 손을 잡고 돕는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붕(朋)’은 동문수학한 벗이고, ‘우(友)’는 동지로서 벗이다. 따라서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함께 하고 뜻을 같이한 벗을 붕우라 한다.
예로부터 그 사람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사귀는 친구를 보라고 했다. 친구라고 해서 다 친구가 아니고, 누구에게나 친구는 누구에게도 친구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불행은 누가 친구가 아닌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인디언들도 친구를 가리켜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 했다.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라는 글귀처럼 모진 바람이 불 때라야 강한 풀을 알 수 있다. 어렵고 위험한 처지를 겪어봐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가난할 때의 참다운 친구라는 뜻의 빈천지교(貧賤之交)란 사자성어가 있다. 인간 세상이란 잘 나갈 때는 친구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지만, 몰락할 때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명심보감 교우편에 ‘급난지붕 일개무(急難之朋 一個無)’라는 글귀가 나온다. 풀이하자면 “급하고 어려울 때 나를 도와주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라는 뜻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떠오르는 인물이 추사 김정희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학자이자 서예가였던 추사가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 그 많던 친구 중에 누구 한 사람 찾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소식을 전한 이가 있었는데, 예전에 중국 청나라에 사절로 함께 간 제자였던 ‘이상적’이라는 선비다.
이상적의 가계는 9대에 걸쳐 대대로 역관 집안이다. 그는 중국에서 많은 책을 구입해서 그 먼 제주도까지 보내 주었다.
오랜 귀양살이로 외로움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던 추사에게 그의 우정은 큰 위로와 감동을 주었다.
추사는 절절한 우정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았는데 그것이 바로 국보로 지정된 유명한 ‘세한도’다.
‘세한도’라는 것은 ‘날씨가 차가워지고 난 후에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는 뜻이다. 잎이 무성한 여름에는 모든 나무가 푸르지만, 날씨가 차가워지는 늦가을이 되면 상록수와 활엽수가 확연히 구분된다. 모름지기 친구 관계 또한 자연의 이치와 다를 바 없다.
인생의 5가지 부자로는 돈, 시간, 친구, 취미, 건강을 꼽는데, 그중에서도 ‘친구 부자’야 말로 인생 후반이 넉넉한 진짜 부자라고 할 것이다.
외롭고 힘든 인생길에서 따뜻하고 정겨운 우정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친구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주위에 마음을 기댈 친구가 없다면 그 사람은 필시 불행한 인생임에 틀림없다.
결국 “내가 친구가 없는 이유는 내가 그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좋은 친구를 얻는 일은 전적으로 자신이 하기에 달려있다.
내 주위에 정말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줄 친구가 있다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고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와 동문들을 동창회나 모임 때 가끔 만난다. 각지에 흩어져 살다 보면 서로의 생활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항상 좋은 일들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 마음이 상하고 아픈 일, 그 어디에도 속 시원하게 터놓고 얘기하지 못할 일도 있다.
필자는 그들에게 어떤 친구였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어릴 때 함께 자란 ‘죽마고우’였는지,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은 ‘급난지붕’이었는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수어지교’였는지, 이것도 아니면 밥이나 술을 먹을 때 좋아하는 ‘주식형제(酒食兄弟)’인가! 하고, 친구는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가 진짜다. ‘세한도’ 같은 친구가 있는 우리의 삶이 됐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