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이종희(1890.04.19.~1946.03.28.) 훈격(서훈년도) : 독립장(1977)rn | | ⓒ 익산신문 | |
이종희 선생은 1890년 4월 19일 지금의 전라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에서 태어나 1919년 일본인 관리 암살 및 관청 파괴를 주도한 ‘의열단’에 가입해 일본군 다나카기이치 대장 살해사건에 가담했습니다.
또한 1932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관으로서 한인청년사관 양성에 힘쓰며 1937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위원으로 약산 김원봉선생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이끌었습니다.
1943년에는 김원봉 선생의 뒤를 이어 광복군 총사령관 제1지대장을 맡아 항일무장투쟁을 이끌다 194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전라도 대표로 활동했습니다.
이종희 선생은 1942년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됨에 따라 광복군 제1지대의 소교로 임명되어 총무조장으로 복무하였습니다.
중경에서 주로 대원들의 군량 수급 사무, 신입 대원에 대한 교육훈련과 연합군측에서 필요로 하는 인원을 요청할 경우 인원 파견하여 초모 선전, 정보 수집 및 연합군과의 합작공작 등 임무를 수행하게 하면서, 각 구대의 공작활동을 지휘 감독하였습니다.
의정원 의원과 광복군 고급참모로서 항일투쟁을 계속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병상에서 해방을 맞은 선생은 1946년 고국땅을 밟기 위해 오던 중 배 안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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