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한승진 황등중 교사 | | ⓒ 익산신문 |
죽고 사는 일이 아니면 조금 느려도 괜찮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의 글에서 깊은 울림이 남는 구절이 기억난다.
그는 아우슈비츠에 끌려갔을 때, 오랫동안 연구하고 고생하여 쓰고 이제 막 출판을 앞둔 옥고(玉稿)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저명한 신경정신과 의사였지만 수용소에서 그의 모든 지위와 명성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더욱이 그는 다른 모든 소지품과 함께 그 옥고를 빼앗겼다.
그에게 이 원고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이룬 그야말로 자신의 삶 전체의 결정체와도 같은 것이었다. 허탈감과 절망감에 고개를 떨어뜨린 그에게 누군가 입으라고 건네준 것은 죽은 수감자의 옷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허름한 옷을 입으려다가 문득 그 속에서 찢긴 기도서 조각을 발견했다. 거기엔 고통 중에도 삶을 긍정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고통이나 심지어 죽음 앞에서까지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삶을 긍정해야하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 순간 그는 원고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버렸다.
그 원고가 출판되느냐의 여부에 자기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달려 있는 가는 무의미하게 생각되었다. 그는 욕심과 잡념을 한순간에 내려놓는 자유를 만끽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잃을 것도 없게 된 그는 지옥 같은 3년의 수용소 생활을 견디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을 녹여내 의미요법이라는 심리치료의 새 장을 열었다.
집착은 불안과 두려움을 낳고 그것이 우울의 원인이 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용어 중에 ‘성공 콤플렉스’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언젠가는 그 자리에서 끌려 내려올 수밖에 없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을 말한다.
결국 성공에 대한 집착과 자리 보존에 대한 열망이 일과 자신의 마음을 어그러지게 한다.
‘알렉산더 콤플렉스’ 라는 것도 있다. 이 말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알렉산더 대왕이 당시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나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게 웬일인가’싶어 그 이유를 부하들이 물었더니,
알렉산더 대왕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그토록 오랜 세월 꿈꾸고 노력한 끝에 드디어 세계정복의 꿈을 이루었다. 그런데 왜 펑펑 울었을까?
그것은 바로 이제 그는 더 이상 욕망을 채울 대상과 소망할 목표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가 주는 의미는 참된 행복은 욕망을 좇아 치열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걸까? 인생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는 참된 비결은 무엇일까? 톨스토이 단편집에서 본 욕심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난다.
어느 땅 주인이 그동안 자기 땅에서 일한 사람에게 고생했으니 지금부터 해가 지기까지 밟고 온 땅은 모두 주겠다고 했다. 그동안 자기 땅이 없어, 남의 땅에서 살아온 사람은 그 자리에서 뛸 듯이 기뻤다.
그래서 아침 일찍 있는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주인이 안 보일 정도로 멀리 온 것이었다. 평생 먹고살고도 남을 땅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순간 욕심이 났다. 그래서 그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니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그제야 하늘을 보니 해가 질 것만 같았다. 아차, 싶은 마음에 있는 힘을 다해 돌아서서 달렸다.
드디어 출발한 곳에 다다랐다. 그런데 너무나 무리를 해서 그만 돌아와서는 쓰러져 죽고 말았다. 땅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의 땅은 우리 동네의 절반이나 될 뻔했지만 지금 이 사람의 땅은 한 평의 무덤밖에 없게 되었다.”
사람의 욕심이란 게 끝이 없다. 자기 마음 조절도 쉬운 게 아니다. 이 사람은 욕심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지나친 욕심은 자기를 망치게 할 수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자기 분수에 적절하게 일하고 사는 게 지혜로운 일이다. 자기 능력 이상의 자리에서 과부하로 힘들어하지 말고 여유를 꼭 가지면 좋겠다.
맡은 일을 정성스럽게 잘하려고 하지만, 맡은 일의 가짓수가 너무 많고 그 일들이 너무 힘들면, 아무리 성실하고 싶어도 성실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성실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가짓수를 줄이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때그때 자기에게 가장중요한 일이 무엇이며, 그보다 덜 중요한 일은 무엇인지, 또 중요하지 않은 일은 무엇인지를 잘 가늠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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