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한승진 황등중 교사 | | ⓒ 익산신문 |
언젠가 가족나들이로 시내 대형마트에 간 적이 있다. 휴일이라 그런지 인산인해를 이룬 모습, 여기저기 상품 판매에 열을 올려대는 고성들, 분주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왠지 어수선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 신조어로 ‘샐러던트(샐러리맨과 스튜던트의 합성어)’라는 말이 있다. 퇴근 후에도 영어와 자격증, 대학원 등으로 공부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이 중에는 회사원은 물론 공무원과 교사, 성직자 등 참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이런 공부가 그저 취미나 자기계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압력에 의해, 더 높아지기 위한,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몸부림인 듯해 씁쓸하다.
요즘 또 새로운 신조어로 ‘갤러리맨’이라는 말도 있다. 골프경기의 관람객을 일컫는 갤러리를 비유한 말로, 직장의 모든 일을 마치 골프 경기 구경하듯이 관망하는 직장인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줄을 잘못 서면 바로 밀려나는 상사들을 보며, 어느 날 갑자기 옆 책상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적이 된 사람들에게 주인의식이란 게 있을 리 없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애쓰지 않으며, 그저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고 세태의 흐름을 눈치껏 읽어 적당히 따라갈 뿐이다.
느림의 미학을 발견치 못하고, 쫓기듯 살아가는 모습들과 그저 보신에 치중하는 복지부동의 삶이 오늘 우리의 모습인 듯해 그저 쓴웃음 지어 본다.
요즘 마음이 좀 허한 것 같다. 인간관계라는 게 정답이 없나 보다. 사귐의 양상도, 평가도 천차만별이다.
나이가 들면 더 성숙해지고 어른 노릇을 잘해야 하는데 어떤 이들을 보면 오히려 더 독선과 아집으로 더 어려지는 것만 같다.
그저 자신의 살아온 경험이 후배들에게 살아 있는 전설이 되기를 바라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자기 확신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한다. 높아지면 넒은 마음이란 것과는 담을 쌓고 멀어져야 하는 건 아니겠지.
혹시 높아지려면 높은 곳을 향해 집중하면서 더불어 사는 길과 낮은 사람과 함께함은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건가? 그렇게들 살아야 하는 건가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 참 착잡해진다. 요즘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첫째 딸을 낳으면서 커다란 체험을 했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임신중독으로 920그램이라는 초극저체중 미숙아로 태어난 딸은 그날부터 98일간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지내야만 했다.
그때 매일같이 병원에 가서 가녀린 딸을 보고, 눈덩이처럼 불어 가는 치료비를 걱정하면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저 사랑하는 딸만 살아 준다면 내 모든 소유, 소망을 다 내준다 해도 상관없다. 설령 사랑이가 공부를 못해도, 조금 건강치 못해도 좋다. 그저 살아만 준다면…….’
이런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 가면서 딸에게 바라는 것 하나 없는 무욕의 순간을 경험하였다. 그러면서 분주하게 살아온 내 삶의 욕망과 소망도 내려놓음을 경험했다. 그 순간 몇 해 전부터 앓아 온 병고에 대한 두려움과 경제적인 걱정도 사라졌다.
집착을 버리고 나서 얻는 홀가분한 내려놓음의 자유가 내 가슴속에 가득해지면서 쓸데없는 두려움과 마음을 혼미하게 하는 잡념들도 사라졌다. 그렇다. 좀 서툴고 느리고 부족하고 실수하면 어떤가. 다 잘 살자고 하는 것 아닌가.
굳이 무리해가면서 불안해하면서 건강해치면서 할 일은 아니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이상 조금 여유를 갖고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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