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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유은미 호원대학교 공연미디어학부 교수 | | ⓒ 익산신문 | 인간은 관계 속에서 존재를 확인한다.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오랜 이웃까지 우리는 수많은 인연 안에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어떤 관계도 상처 없이 유지될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툼, 오해, 침묵, 기대의 어긋남 속에서 관계의 표면은 조금씩 금이 간다.
우리는 그 틈을 불안하게 느끼며 마음을 닫거나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 금은, 회복 불가능한 손상일까?
이 질문에 대해 일본의 전통 도자기 수복 기법 ‘킨츠키(金継ぎ)’는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킨츠키는 깨진 도자기를 접착제로 붙이고, 그 자리에 금가루를 입혀 마무리하는 기술이다.
금이 간 자리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금빛으로 강조하며 그 도자기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수선이 아니라, 상처를 포용하고 재해석하는 ‘예술’이다. 킨츠키의 철학은 인간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관계가 깨졌다고 해서 곧장 끝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진심과 책임, 그리고 시간이라는 금가루를 입힌다면, 오히려 더 깊고 아름다운 유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
현대인들의 인간관계는 점점 더 얕고 단절되기 쉬운 구조 속에 있다. SNS는 수많은 인연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관계의 깊이는 얇아졌다.
누군가에게 실망하거나 갈등이 생기면, 관계를 회복하기보다는 ‘차단’하거나 ‘잊기’를 선택한다. 그것이 더 빠르고 편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단절은 결국 우리 자신을 고립시킨다. 인간은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상처를 딛고 이해하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관계는 성숙해진다.
이와 함께 인간관계의 회복에 있어 중요한 또 하나의 열쇠는 ‘타이밍’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특별한 시간의 신이 존재한다.
바로 ‘카이로스(Kairos)’다. 카이로스는 '결정적인 기회의 순간'을 상징하는 신으로, 머리 앞쪽에만 머리카락이 있고 뒷머리는 민머리다.
이 형상은 그가 앞에서 다가올 때 잡지 않으면, 지나간 뒤에는 절대 붙잡을 수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우리도 관계 속에서 수많은 카이로스의 순간을 마주한다. 사과를 해야 할 때, 안부를 물어야 할 때, 혹은 ‘그 한마디’를 꺼내야 할 때. 그러나 우리는 자주 머뭇거린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일까’ ‘상대가 먼저 연락하길 기다리자’는 생각은, 결국 기회의 뒷머리를 놓치게 만든다.
그렇게 놓친 수많은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후회로 남는다. “그때 내가 먼저 연락했더라면”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타이밍이 아니라, 용기 있는 실천이다. 인간관계는 정지된 것이 아니라, 계속 흘러가는 생명체와 같다.
사과도, 화해도, 이해도 결국 ‘지금 이 순간’ 선택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카이로스는 ‘행동하는 자’에게만 미소를 지어준다.
현대 사회는 효율과 속도를 중요시하지만, 인간관계만큼은 느림과 반복, 실패와 회복을 통해 완성된다.
킨츠키처럼 깨진 자리에 아름다움을 새기고, 카이로스처럼 결정적인 순간을 붙잡는 태도는 결국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힘이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관계의 금이 간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무너진 채 방치하거나, 깨진 자리에 금을 입혀 다시 이어붙이는 일.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혹시 지금, 떠오르는 얼굴이 있는가? 언젠가 가까웠지만 지금은 멀어진 사람. 그 관계의 금은 어쩌면 아직 회복될 수 있다.
진심을 담아 연락해보자. 말 한마디, 사소한 메시지, 혹은 진심 어린 사과 하나가 카이로스의 문을 다시 열 수 있다.
금 간 관계는 흠이 아니라, 시간의 무늬다. 상처 입은 자리마다 진심으로 이어붙인 관계는 더 깊고 단단해진다.
인간관계란 결국, 금빛으로 반짝이는 수복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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