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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얼음의 종이를 통과해
조용한 저녁이 흘러든다
붉은 것 없이 저무는 저녁
앞집 마당
나목에 매놓은 빨랫줄에서
감색 학생코트가 이따금 펄럭인다
(이런 저녁
내 심장은 서랍 속에 있고)
유리창,
침묵하는 얼음의 백지
입술을 열었다가 나는
단단한 밀봉을
배운다
이 시를 보면 시집 제목과 달리, 한강 시인이 서랍에 넣어 둔 것은 저녁이 아니라 '심장'이었다 - 그걸 얘기하는 연을 괄호로 묶어 서랍 속을 형상화한 건 기발하다. "입술을 열었다가 나는/ 단단한 밀봉을/ 배운다". 이런 저녁에 화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유리창과 함께 침묵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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