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한승진 황등중 교사 | | ⓒ 익산신문 |
“나는 고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고통이라는 선물’을 쓴 외과 의사 폴 브랜드 박사의 말이다.
인도에서 의료선교사로 헌신한 그는 한센병(문둥병)이 왜 심각한지 그 원인을 찾아낸 사람이다. 고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니 좀 의아한 말이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한센병은 피부는 물론이고 신체 각 부위를 상하게 해서 흉한 모습으로 살게 하는 난치병이다.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도 무감각해지게 된다.
얼마나 끔찍한가?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코가 떨어져 나가도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가 결국 죽음이 이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폴 브랜드 박사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한센병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고통이다. 그보다 큰 선물은 없다. 그러므로 나는 고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우리는 고통이 없는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행복의 반대는 불행인데, 불행의 근본 원인을 고통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고통, 고난, 불행 이런 것들은 우리가 피하고 싶은 것들이다.
그것이 없을수록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고통을 피하고 싶고 고통이 없는 편안한 삶을 지향하고 살아간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인사말이 “안녕하세요?”이다. 안녕이란 말도 편안하다. 즉 고통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정말 고통이 없다는 것 그것이 좋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때로는 고통이 있다는 것으로 인해서 정말 행복이 무엇인지 그걸 깨닫게 될 수도 있다.
때로는 우리가 무감각해지라는 것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위험일 수 있다. 그것이 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어도 내 일이 아니라고 아무 느낌이 없거나 공감하지 못하거나 그래서 슬퍼하지도 않고 그래서 도와준다든가 함께 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 이것은 엄청난 불행이다. 이는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그러한 길이다.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엄청난 사고들로 인해서 마음이 아프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 끔찍하고 충격적인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일들을 보면서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이 당연한 것처럼 나와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외면하는 것처럼 전해지는 모습들이다. 나와 상관없기에 그럴 수 있다는 것인가? 그래도 된다는 것인가?
그것은 정말로 우리 사회에 커다란 도덕적 불감증이다. 도덕에서 도덕적 민감성이 있다. 도덕적 상상력이라는 것도 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안타까운 사회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감하고 그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도덕적 민감성이다.
행동에 앞서 결과를 예측해 보고 생각해 보는 능력을 도덕적 상상력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도덕적 민감성이나 도덕적 상상력이 부족해진다는 현실 이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이른다는 것, 점점 잘살게 된다는 것,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다는 것,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필요하고 절실한 일은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우리가 더 높은 수준에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는 타락한 나라로, 비도덕적인 나라로 치닫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점차 우리에게 젖어 들고 있는 도덕적인 불감증,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려는 그런 마음들을 돌이켜 보고 진지하게 함께 연대하며 아파할 수 있는 그러한 성숙한 자세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이겨나가는 그러한 사회 연대의식으로 함께 성장하고 함께 치유해 나가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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