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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칼럼】부활의 봄
마스터 기자 / ikpress@naver.com입력 : 2025년 03월 10일(월)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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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식 (자)이리청과 공동대표
ⓒ 익산신문

우리 선친께선 목련이 질 때 운명하셨다. 공룡시대에도 있었고 나무에 오른 연꽃이라는 목련, 애창곡 ‘목련화’의 가사처럼 희망과 순수를 상징한다. 

그런데 봄은 유감스럽다. 막상 봄인데 춘래불사춘이라 삶이 녹녹하지 않다. 봄은 시작을 의미하지만 죽음을 극복한 만물의 순환, 질서, 생명의 이치를 표징한다. 

우리의 최후이자 공포의 대상 죽음! 진정한 의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 봄은 편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죽음은 무엇인가? 공자도 “未知生 焉知死,미지생 언지사”라해서 “생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하고 자탄해 마지않은 죽음, 중국을 통해 유입된 불교는 죽음을 초월하려는 월생초사의 논리를 맹렬히 발전시켰다. 

인생을 고통의 바다로 단정하고 시작하는 인도의 힌두적 사고질서에 전통 한국사회도 상당량 영향을 주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피하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며 고통진 십자가형을 자처하고 우리 인생의 허무함과 원죄를 극복하는 정신적 고양된 극치를 선례로 보여주었다. 

“죽음을 항시 기억(Momento Mori)하며 살라”하는 아포리즘을 상기하자. 죽음을 통해 삶을  반추하고 확장시키자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내 죽음만이 유예되고 있을 뿐이지 부모님을 비롯한 타인의 죽음을 장례문화나 생명 있는 식량을 취득하면서도 친숙히 경험하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삶이란 것에 대해 실존주의자들이 도출해낸 에피소드를 보면 더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기차 안이었고 내가 어디서, 왜, 어디를 향하여 기차를 탔는지 기억이 없다. 그런데 앞에선 서서히 검표원이 다가오고 있고 표가 없는 승객들이 어두컴컴한 기차 밖으로 하차한다. 

허겁지겁 뒤져 봐도 차표는 나오지 않고 나의 차례가 오고 있는 절박성, 죽음의 의미이다. 

신화 속에 시지프스가 신의 노여움으로 형벌을 받는다. 무거운 바윗돌을 뾰족한 산 정상까지 올려놓기를 영원히 반복하라는 것이다. 바위가 떨어지면 다시 올리고 그런 무위의 권태로운 삶을 덧없이 영위하는 것. 흡사 우리 시대 현대인의 삶이다. 

그때 카뮈의 해답은 이러하다. “얼굴이 짓이겨지도록 최선을 다해 바위를 밀어 올려라. 그리고 신에 대해 반항하며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라. 내려올 때는 보란 듯이 해방의 느낌으로 환희의 노래를 불러 신의 형벌에 대항하라”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택지만큼 묘지에 대해서도 집착해 왔다. 진부할진 몰라도 그만큼 그네들이 죽음을 기억하고 준비해 왔다는 반증이다. 

애국지사들의 절명시 등은 죽음이 진실한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초월적 흔적이 아닐까! 두려움의 대상으로 단정하지 않고 죽음에 대한 지적용기(사파레 아우데, Sapere aude)를 가지고 도리어 삶을 더 숭고하고 경건하게 사는 것이 해법인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매일 죽어가지만 그러기에 죽음에 길들여지지 말고 그의 인질이 되지 말아야 한다. 

어느 날 소리 없이 찾아와 나를 살해하고 가는 무지막지한 죽음에 대한 반항, 원하지도 않게 이 세상에 던져졌지만 내일이라는 가능성에 자신의 운명의 주사위를 당차게 던지는 능동적 삶, 그것이 죽음에 대한 우리의 겸허하고 신중한 자세이다.

영원한 현재(nunc stance)보다는 위대한 한 순간(Augenblick)를 살자. “영생을 바라지 말고 언젠가 죽음의 사자가 왔을 때 가져갈 것이 없이 살자”는 판다로스의 시를 새삼 음미하며…. 

사형수가 사형집행 직전 풀어진 자신의 구두끈을 묶는 기막힌 실존적 상황인 인생을 사유해 본다. 돌아가신 우리 선친의 거친 손금이 다시 나의 손바닥에 강처럼 흐른다. 

봄의 들판을 본다. 죽음 위에 다시 피는 곡식들의 푸름이 일렁인다. 나도 저처럼 키를 재보며 봄을 맞는다.





마스터 기자  i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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