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태현 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 | ⓒ 익산신문 |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지난해 12. 3일 밤 10시 25분에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순간 시계가 45년 전으로 되돌려졌다.
다음 날인 4일 새벽 국회의원들이 계엄군과 경찰들의 저지를 뚫고 담장을 넘어 본회장에 속속 모여들었다. 국회의장은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본회의를 열어 재석의원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국회가 해제결의안을 통과시킨 지 2시간 30분이 지난 새벽 4시에 억지 춘향 격으로 윤 대통령은 계엄령 해제를 선언했다. 이에 김용현 국방부장관은 국방부 관계자에게 소집해제를 지시했고, 그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고 실토했다.
여기서 ‘중과부적’이란 “적은 수로는 많은 적을 대적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무리가 적으면 많은 수의 적과 대적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맹자의 ‘양혜왕편(梁惠王篇)’에 나온다.
중국 전국시대 여러 나라를 다니며 군왕이 갈 길을 역설하던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이렇게 말씀을 올렸다.
“전하께서는 진나라와 초나라에 복종을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군왕의 위신을 지키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천하의 패권을 잡으려 드시는 것은 그야말로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보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선왕은 “아니, 과인의 행동이 그토록 나쁘단 말이오?”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가령, 지금 소국인 추나라와 대국인 초나라가 싸운다면 어느 쪽이 이기겠습니까?”라고 묻자, 선왕은 “그야, 물론 대국인 초나라가 이길 것 아니오.”
“그렇다면 소국은 결코 대국을 이길 수 없고 소수는 다수를 대적하지 못하며(중과부적·衆寡不敵), 약자는 강자에게 패하기 마련이옵니다. 지금 천하에는 사방 1,000리에 아홉 개의 나라가 있는데 제나라도 그 중에 하나이옵니다. 한 나라가 여덟 나라를 굴복시키려 하는 것은 결코 소국인 추나라가 대국인 초나라를 이기려 하는 것과 같지 않사옵니까?” 천하를 제패하려면 무력이 아닌 왕의 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맹자는 역설한 것이다.
조선은 건국 후 200년 동안 외적의 침입 없이 평화가 유지되었다. 그래선지 당파싸움에만 몰두하던 조정에서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 상소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다.
이렇듯 무방비 상태에서 1592년 4월에 군사 15만과 함대 700척 최신식 조총 등으로 무장한 왜병들이 부산포로 침략하여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왜군은 조선 땅에 상륙한지 20일 만에 조선반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나라 전체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해상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전쟁의 반전을 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순신 장군은 옥포대첩과 당포해전, 부산포해전 등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왜군들은 그간의 패배를 설욕하고자 14만 여명의 정예군을 이끌고 다시 조선을 침략했다. 이순신은 12척의 전함으로 왜병 133척을 맞았다. 객관적인 전력만을 놓고 볼 때 이 싸움은 승패가 이미 결정된 전투였다. 이순신 장군이 볼 때 ‘중과부적’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장군은 “소생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투에 앞서 머뭇거리는 부하들에게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라는 비장한 결심을 밝혔다.
죽기를 각오하고 맞붙은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왜선 133척을 수장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
‘중과부적’은 얼핏 패배주의를 앞세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맹자가 오만과 자만을 앞세운 임금의 패도정치를 비판하면서 나온 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 ‘검찰공화국’이라는 단어가 회자되고 있다. 물론 칭찬이 아니고 비판이다.
오만과 자만과 욕심이 바탕이 된 무력의 패도정치는 나라를 망친다. 국정의 모든 것을 검찰 권력으로 재단하는 것은 좋은 정치는커녕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없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권력의 칼로 잘라도 또 잘라도 다시 싹이 자라난다는 명제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그마나 희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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