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한승진 황등중 교사 | | ⓒ 익산신문 |
내가 어렸을 적에 즐겨 보던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동물의 왕국이다.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자연과 생태계의 신비를 볼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보호색이다. 동물들은 저마다의 보호색을 갖고 천적의 눈을 피하거나 거꾸로 먹이에 경계심을 풀어 사냥을 손쉽게 한다.
이런 동물의 모습에 탄성을 지르다가 우리 인간 세계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단점이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자신을 숨기기도 하고 필요 이상의 허세를 부리기도 하며 어떤 때는 전혀 다른 말과 행동으로 서로 속이기도 한다.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고 살면 좋겠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뭔가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경쟁의식으로 불안에 떨거나 불신에 찬 모습이 있다. 그러기에 자신을 감추거나 다른 사람의 감춤을 알아채려고 노력하는 긴장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연 질서 속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오히려 자랑하는 존재가 있다. 그것이 바로 꽃이다. 꽃은 동물처럼 움직일 수가 없다. 그저 뿌리가 심긴 그 토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러면 참 불쌍한 존재일 거 같고 초라하고 연약한 존재일 것 같은데 이 꽃에서 우리가 감동하는 영역들이 있다. 꽃은 자기의 색깔과 모양을 드러내기에 주저함이 없다. 꽃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우리 또한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속여야 하고 또 그런 위장을 거듭해야만 하는 그런 모습이 얼마나 우리에게 불안감을 주고 긴장하게 만들까?
우리의 삶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주어진 여건에서 감사하며 만족할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서 말한 꽃처럼 여러 가지 제약이 있지만 그 제약에서 자신을 비하하거나 그래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감추고자 꾸미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의 모습에서 자신을 드러내면 얼마나 좋을까?
주어진 여건에 순응하면서 자신의 빛깔과 향기를 드러내는 모습 그 모습 속에서 우리는 뭔가 삶의 큰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렇다. 우리 또한 그렇게 화려한 존재들은 아니다.
태어나 보니 내가 이런 가정이었고 내가 이런 부모 밑에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살게 된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누구의 자녀, 어느 지역 출신, 어느 정도의 가정환경, 어느 정도의 지능과 재능, 건강이나 외모 이런 것들 속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들이 좋은 조건이라면 뭐 신이 나서 행복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상심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 떨고 또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을 부끄러워하거나 자신을 감추려고 하는 그런 연약한 모습 또한 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게 주어진 건강, 재산, 부모의 힘, 이런 것들은 내가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고 그냥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못 된다.
거꾸로 내게 부족한 것이 있다 하면 내 외모, 건강, 재능, 지능, 재산 이런 것들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내가 최선을 다해서 어느 정도 해 나간다면 그것 또한 행복한 일이고 그것도 훌륭한 일이고 그것 또한 의미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조금 내려놓음, 조금 여유로움을 가져보니까 내 삶에 대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좀 관용하게 되는 것 같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과 서운함으로 자신을 비하하거나 부모나 상황을 원망하기보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그 주어진 여건에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모습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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