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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로 새삶여는 송재성 성호그룹 회장
"기부는 국가경제 살리는 보물창고"
방학때도 매일 등교…성실성 자랑할 만
구두쇠로 모은 돈 인재 육성 자산됐으면
익산신문 기자 / ikpress@naver.com 입력 : 2009년 07월 27일(월)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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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모교인 이리공고에 장학금 10억원을 기부한 송재성 성호그룹 회장(77). 그는 이날 한동안 눈시울을 붉혔다. 일찍 오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면서 이리공고의 명성을 회복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의 별명을 '구두쇠'라고 소개하는 송 회장은 거북이처럼 노력하다보니 성공이 눈앞에 와 있더라면서 지켜보는 이들을 또 한번 감동케 했다.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 8월경 발족할 계획인 '송재성장학회' 출범을 앞두고 송 회장을 만나 살아온 여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모교에 장학금을 내놓아 관심을 끌었습니다만.
"그랬던 것 같아요. 별일은 아닌데…. 다만 좀 늦게 와서 미안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고향 일을 먼저 추진했어야 하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 후배들을 직접 만나니 아쉬움이 더 크더군요."
-기부당일 '생애 첫 기쁨이었다'고 표현하셨는데.
"그만큼 감격적이었어요(웃음). 후배들의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보는데 어찌나 가슴이 벅차오르던지…. 참 오길 잘했구나 싶기도 했고요. 후배들의 눈빛이 살아있는 걸 보니 희망이 보였어요. 앞으로 자주 찾아 격려할 계획입니다."
-현재 이리공고의 위상이 많이 추락했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다닐 때만해도 명문이었어요 명문…. 지금은 이공계고 인기가 없으니 위상도 떨어지는 모양입디다. 제가 명성을 복원하는데 앞장서야지요. 그래서 명문고 위상을 되찾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기부에 대한 남다른 소신이 있으신지요.
"딱히 소신이랄 것은 없어요. 하지만 기부가 경제를 키운다는 생각은 변함없지요. 미국을 예로 들어볼까요? 미국이 강대국이 된 배경은 하버드 같은 유명 대학이 전문지식인을 많이 배출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게 가능했던 것은 선배 경영인들이 기부한 돈으로 충분히 연구할 수 있었던 연유지요. 결국은 이런 기본이 세계를 장악하게 한 동력이 돼줬을 겁니다."
-그런 배경으로 기부를 시작하셨나요.
"굳이 말하라면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돈을 벌면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기부해야겠다 싶었어요. 그 돈으로 훌륭한 전문인들이 많이 생겨나고 종국엔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 말이지요."
-하지만 본인 의도대로 써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 건 염려안합니다. 어떻게든 많은 아이들이 혜택을 받고 성장할 것이라 생각해요. 또 그 애들이 선배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본받을 것이라 확신하고요. 의도가 선하면 매사 선하게 풀리기 마련이지요."
-기부문화에 대한 소견이라면요.
"잘 쓰는 사람은 결코 기부할 수가 없어요. 쓰는 맛을 알면 절대 모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안쓰는 사람이 기부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저녁 외식 안하고, 10여년 전부터는 술도 입에 대지 않아요. 푼돈들이 모아져서 저축이 가능한 겁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감회가 남다르셨던 것 같은데 회장님의 학창시절은 어떠셨나요.
"겨울도 짚신으로 날 정도로 정말 가난했어요. 그래도 왜 그렇게 공부가 좋았는지…. 방학 때도 학기중과 똑같이 학교에 갔어요.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며 아이들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공부했지요.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성실의 자산이 돼준 것도 같아요(웃음)."
-한양대에 가신 걸 보면 머리도 좋으셨던 것 같습니다.
"아아~. 그렇지 않아요. 저는 매사 노력형입니다. 돈을 모으는 것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세상은 말이지요. 노력하는 자들이 이루는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 동기 중에 공부를 아주 잘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 경성사범을 갔지요. 당시만 해도 역사상 없던 일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 저 만큼 기부 안한 모양입디다. 알려진 바 없는 걸 보면…. 그 친구 생각하면 반드시 거북이가 이긴다는 철학이 새삼 다가오곤 해요."
-자신을 위해서는 쓰시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맞아요 맞아. 그래서 제 별명이 구두쇠랍디다. 오늘 입은 양복도 1992년 지은 것인데 아직도 성성하잖아요. 세숫물 재활용하는 것도 듣는 사람마다 웃어요. 그래도 어쩝니까. 제가 아끼지 않으면 그나마 누구도 안할 일인데…. 이렇게 괴짜인 사람을 믿고 따라주는 가족이 고마울 따름이지요."
-나이 쉰에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특별한 동기라도.
"나이 들어 시작해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소. 더불어 인생을 허무하게 지내기보다 태어나서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작용했지요. 정말 25년동안 꾀 한번 안 팔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계열사가 10개나 되는데요. 기업소개 좀.
"그럽시다. 우리 그룹은 현대정보기술을 인수하면서야 언론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현대정보기술은 우리나라 IT서비스업계 4위를 차지하는 기업이지요. 성호철관은 새지 않는 하수관으로 미국 재료시험학회 품질인증을 받기도 했고요. 또 성현케미칼은 내화 피복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성현퍼라이트는 단열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건설업은 성호인터내셔날과 성현산업이 있고요. 등등입니다."
-10개의 계열사중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이라면요.
"아무래도 현대정보기술이지요. 현재도 글로벌시대를 맞아 베트남 중앙은행에 IT서비스를 하고 있고요. 베트남 부근 저개발국가에도 진출해 외화 획득을 위해 노력중입니다."
-오늘의 성공 비결을 꼽으시라면요.
"뭐니뭐니해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어릴 때도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요. 대학에도 진학했고, 석사까지…. 엄청 노력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성질 급한 것만 빼고는 버릴 게 없습디다(웃음)."
-혹 존경하는 사람이 있으신지.
"안중근 의사지요. 핍박받는 민족을 위해 자신을 던졌잖아요. 실천하는 애국심, 아무나 못합니다. 정말 쉽지 않아요. 민족의 쓰라린 가슴에 통쾌함을 선물해준 인물이어서 늘 그를 존경합니다. 그런 의미로 선생의 자필을 책상 위에 붙여두고 늘 보면서 생각하지요."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취미 한가지 소개하신다면요.
"아침이면 꼭 30분씩 산책합니다. 노래도 자주 부르고요. 18번이라면 '죽창에 삿갓쓰고, 강남 삼천리~' 방랑 김삿갓입니다. 꼭 내 얘기 같지않소?"
<취재를 마치며>
각설하고 송 회장은 몹시 순박했다. 별명을 구두쇠라고 소개하면서 허리띠를 풀어 양복바지의 라벨을 보여주겠다니 참으로 난처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의 아내 양대원씨(73)는 본래 약사였다. 그 역시 순박하고 고고했다. 양씨는 "원칙대로 소신껏 사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으나 그 뜻이 옳다고 여겨 늘 섬겼다"면서 "그렇다 해도 남편으로 아버지로 한 번도 가족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1조나 되는 재산을 갖고 있음에도 늘 겸손하고 순수했던 송 회장. 평생 그의 삶이 교훈으로 남을 것 같아 기쁘다. 인터뷰 내내 소탈하게 대해주시고 어여삐 봐주신 점 고맙게 생각한다.
/김영애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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