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정성수 시인 | | ⓒ 익산신문 |
옛날 시집살이는 며느리에게 가사 노동을 넘어, 가문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강요하는 문화적 관습이자, 여성에 대한 엄격한 규율이었다. 이는 일종의 훈육 과정으로 효는 물론 예절과 가정의 규범을 체득시키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며느리는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짓고 집안 청소를 하고, 시부모를 챙겨야 했다. 이런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노동은 며느리가 내 가정이라는 생각보다는 타인의 집에서 일한다는 의식을 강하게 느끼게 했다.
특히, 명절이나 생일 등 특별한 날이 되면,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음식 준비나 행사에서 며느리 역할을 강하게 주문했다. 결국 시집살이는 며느리에게 복종을 강요하고 가문의 전통을 계승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오늘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가부장적 구조에서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지시와 권위에 순응해야 했지만, 이제는 세대와 가치관의 변화로 그 관계가 역전되었다.
특히, 며느리가 직업을 가지거나,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경우 며느리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요구하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자녀 양육에 있어 며느리의 역할이 두드러지면서, 시어머니는 조언자나 지원자의 위치가 되었다.
오히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며느리의 눈치를 보거나 의견을 묻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관계는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와 경제적 자립이나 독립 등에 크게 작용했다.
현대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는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재편성되고 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의지하거나,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고 주장을 제시하는 상황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시어머니가 황당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손자가 버릇없이 굴자 시어머니가 ‘애가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 며느리는 ‘제 자식 교육은 제가 합니다’고 당돌하게 말하기도 한다.
이는 시어머니의 말을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인 동시에 거부하는 모습으로 시어머니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깊어지면, 부부간의 불화로까지 번질 수 있다.
어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멸치볶음을 건네며 말했다. ‘이건 애비가 좋아하는 것이다. 마음먹고 만들었다. 가지고 가거라’고 말하자. 며느리가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시어머니의 멸치볶음은 짜다 못해 소금이라는 것이다. 며느리의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기가 막힐 뿐이었다.
또 다른 예로 시어머니가 ‘아가, 네가 우리 집에 온 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언제 손주를 볼 수 있느냐?’고 며느리에게 말하자 ‘어머니 저는 애를 낳으려고 시집온 게 아니에요. 지금이 좋아요’ 시어머니는 할 말을 잃었다.
이쯤 되면 시어머니의 상전은 며느리다. 이 말은 단순히 반어적인 표현이 아니다. 가정 내에서 며느리가 자녀 교육과 경제적 자립, 시간과 공간 관리 등에서 주도적 역할로 과거의 위계질서는 변화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물론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갈등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가정 내에서 역할 분담이 잘 이루어진다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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