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한승진 황등중 교사 | | ⓒ 익산신문 |
사람들은 특출한 성과를 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각계각층 사람들이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자신이 세운 성과를 발표할 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을 부러워한다.
그런데 간혹 그 부러움이 그 정도를 넘어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상대적인 허탈감에 빠질 때가 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성과를 낼 동안 나 자신은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이 세월만 보내며 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꾸만 자기를 깎아내리고 자신의 삶에 불평과 불만으로 치달을 때 그리고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그것이 지나쳐서 시기와 질투로 치달을 때 그런 삶은 우울해질 뿐이고 그 우울 속에서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말뿐이다.
여기서 벗어나서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 자신에 대한 존중의 마음으로 나아감이 더 유익한 일이다.
‘채근담’ 전집 28장에 나오는 글이다. “세상살이에서 반드시 공만을 찾지 마라. 허물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공이다. 남에게 베풀 때에 그 덕에 감동하기를 바라지 마라. 원망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덕이다.”
그렇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성실하게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 또한 대단한 일은 아니나 무시되거나 가볍게 여겨질 일은 아니다.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나 그래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냈고 큰 과오 없이 오늘에 이름도 기특한 일이다.
때론 서툴지만 몸부림치면서 내 자리를 지켜왔다. 이런 나 자신을 그 나름대로 인정해주자. 누구한테 인정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그래도 기특하다고 여겨본다.
그래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뛰어난 머리가 아닌 사람으로 태어나서, 특별히 건강하지 못한 신체 조건에서도 여기까지 이루어 왔음에 기특하다고 해주련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나를 칭찬하고 내가 나를 격려하고 위로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나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할 것인가? 그렇다고 자만에 빠져들면 안 될 일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자기만족에 휩싸여서 복지부동이거나 자기 성장을 멈춘 도태에 빠지자는 건 아니다. 다만 그저 내 삶에 대한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지혜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나의 지금 위치를 불평하고 자책할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살아온 것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을 인정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를 인정한다는 것, 나를 존중한다는 것 거기서 출발하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반성을 통해서 성숙하는 모습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또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우려는 자세, 조금씩 나아지는 그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사명이 있고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 일을 통해서 자아실현을 하고 그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유익을 끼치는 것이 있고 그것을 통해서 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
크든 작든 간에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열심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그 나름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다. 때로는 큰 보상이 없어도 좋다. 때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내가 나 자신을 잘 안다. 내가 성실하게 살아왔는지, 마지못해 살아왔는지, 게으름으로 살아왔는지 나 자신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
남의 칭찬이 없다 해도 때론 실수하거나 실패했다고 해도 과정 속에서 성실했다면, 좋은 의도였다면 스스로는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면 좋을 것 같다.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 나 자신을 존중하는 것, 거기서 살아갈 용기와 지혜와 힘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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