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송태규 시인 | | ⓒ 익산신문 |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점심을 나누는 친구들이 있다. 낮술도 건네며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며칠 전, 소주 두어 잔을 들이켜며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다.
분위기가 무르익는데 간병인이 보내는 전화를 받았다. 대낮에 내게 전화할 일이 없는데 느낌이 개운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이상해요. 곧 운명하실 것 같습니다. 빨리 집으로 오세요.” 처음 겪는 일이라 난데없었다. 치매 증세와 거동을 못 하시는 아버지를 3년 넘게 요양병원으로 모셨다가 2년 전쯤 다시 집으로 모셨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자식들, 손주들이 자주 들랑거렸다. 그 덕분인지 드시는 것도 인지력도 점점 좋아졌다. 이런 상태라면 2~3년은 너끈히 우리 곁을 지켜주시리라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택시를 잡아타고 부모님 댁으로 갔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채 이따금 숨을 몰아쉬고 계셨다. 마치 당신 자손들이 다 모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은 자식들과 손주들이 속속 도착했고 말씀을 못하시던 아버지 눈에서 희미하게 눈물이 흘렀다. 그 안에 녹아있는 아버지 말씀을 난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 자식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있어요?” “할 말이 뭐 따로 있나. 형제간들 우애하면 되지.” 두어 달 전 곁에서 잠을 청하다 내가 불쑥 물었던 질문에 해주신 답이다. 그렇게 한 두어 시간이 지난 뒤에 맥박이 희미해지더니 작별을 알리셨다. 참 편안한 모습으로.
아버지 가시는 길, 많은 분께서 따뜻한 마음 보태주셨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별이었기에 온통 회색빛이었고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힘겨운 마음 다잡고 애써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교단을 떠난 지 어느덧 3년이 훌쩍 지났다. 글감을 뒤지거나 문화생활 한답시고 작업실에 일간지 서너 개와 주간 신문을 들인다. 하루하루 구석에 폐지의 키가 쑥쑥 자란다.
매일 버리기가 뭐해 쌓아 두었다가 폐지 수거하는 분 만나면 내어 드린다. 엊그제 다저녁에 당신 몸조차 가늠하기 힘들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빈 수레에 매달려 가셨다.
“할아버지, 폐지 드릴게요.”
난 잡동사니를 치워서 좋고 그분은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좋겠다. 키가 훌쩍 커버린 신문지 더미와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을 죄다 내려 드렸다. 연신 고맙다며 그나마 잔뜩 굽은 허리를 더 숙였다.
다음날 해 질 녘 어스름에 작업실 나서는데 누군가 희미하게 문을 두드린다. 누구지?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분명 소리가 들렸다가 다시 끊겼다. 참 이상하네. 문득 오싹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다시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기척이 없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문을 열었는데 음료수 한 상자를 바닥에 거의 닿게 들고 계신 할아버지가 계셨다.
“어제 고마웠어유.” 음료수를 건네며 짧게 한마디를 남기고 엉금엉금 계단을 내려가신다. 세상에, 이럴 수는 없다. “할아버지, 이거 그냥 가져가세요.” 그분은 난간 손잡이를 잡고 뒤도 안 돌아보고 뒤뚱뒤뚱 사라지셨다.
갑자기 왜 그렇게 슬퍼질까. 문 닫고 음료수를 바라보다 맘껏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 떠나신 지 나흘째 된 날이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음료수 스무 병. 그 목을 비틀어 내 목구멍에 넘길 자신이 없다. 하찮은 일에도 보답하며 살라고 아버지가 보낸 스승님이 다녀가셨다.
곳곳에서 첫눈이 내린다고 온통 떠들썩하다. 아버지 가신 여기는 고마운 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남아서인지 진눈깨비 내린다. 어둑새벽 두꺼운 옷 입고 집 나서며 어디선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아버지 모습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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