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태현 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 | ⓒ 익산신문 |
공직자나 명예롭게 살려는 사람은 화려한 경력의 앞모습 못지않게 뒷모습 관리에 신경 써야한다. 눈에 보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보이지 않은 곳에 더 관심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군자는 반드시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가고 경계해야 한다(君子必愼其獨也)”고 했다.
요즘 공무원사회와 학계·재계·시민사회에서 장·차관, 공기업 임원 등 고위공직 임용 기피 현상이 있다고 한다. 이는 국회 인사청문회의 인사 검증 장벽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가 신상털기를 지양하고 정책 검증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벌써 6년이 지났다. 지난 2018년 투신하여 목숨을 끊은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유서에는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라고 신앙적 양심 고백을 했다.
사람들이 노회찬을 좋아했던 이유는 푸근한 인상 그대로 인간미가 넘쳤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을 하며 정부를 공격하되 선을 넘지 않았다. 그를 상징하는 ‘촌철살인’은 인간다움이 배경이었다. 노회찬은 대한민국에서 보기 힘든 정치인이자 동시에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돈을 받은 것, 거짓말한 것 등이 너무나 양심의 가책이 되어 그런 결단을 한 것이다. 요즘 국회에 노회찬 같은 국회의원이 있을까! 아마 손꼽아보면 열 손가락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양심의 가책이란 말이 있다. 이는 마치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 같은 죄책감이다. “어제를 돌이켜 보면 깨끗한 양심이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다.
늘 자신의 언행과 가족, 친구, 사회를 위해 하지 못한 일을 반성해야 한다. 즉 매일매일 부앙무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 해도 부앙무괴(俯仰無愧), 곧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러봐도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지도층의 도덕성은 필요불가결하다. 여기서 부앙무괴의 한자는 구부릴 부(俯), 우러를 앙(仰), 없을 무(無), 부끄러울 괴(愧)자를 쓴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라고.
맹자의 군자삼락에는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첫째는 부모·형제가 무탈한 것이요, 둘째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요, 셋째는 천하의 인재들을 모아 교육하는 일이다.”라고 했다.
또, 맹자의 진심편에도 “우러러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다(仰不愧於天,俯不?於人,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가 나온다. 즉, 하늘을 우러러보나 세상을 굽어보나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음을 이르는 부앙무괴(俯仰無愧)가 나온다.
이와 반대로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자들을 가리켜 후안무치라고 한다. 특히 정치권에 그런 후안무치와 안하무인의 인간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이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요즘 우리나라 정치가 그렇다. 여의도의 여·야 정치인이나 용산 대통령실에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참으로 구차스럽다. 일말의 양심이나 부끄러움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의 변명과 거짓을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맹자는 부끄러움에 대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이라면 부끄러움이 없어서는 안 된다(人不可以無恥),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하는 것(無恥之恥)이, 참으로 부끄러움 없음(無恥矣)이다”라고.
부끄러움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권모술수를 부리는 자는 어디에서나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렇듯, 맹자가 말하는 부앙무괴는 확실히 인간을 위한 도덕적 검증의 심리적 기준이다. 사람이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고 마음이 당당하다는 것, 즉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 되고, 올바르고,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은 참으로 맹자가 말하는 군자들 삶의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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