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송태규 시인 | | ⓒ 익산신문 |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 간다. 당시 칠팔 명이 모여 시인 선생님에게 지도를 받았다. 그 무렵 시를 쓰고 싶다는 욕심만 앞섰다.
글감을 찾아 머리를 싸매고 얼기설기 단어만 꿰맞추어 수업 시간에 내밀었다. 선생님의 예리한 눈을 비켜갈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장작불 곁에 서 있는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간이 흐르고 쇳덩이가 풀무질 당하며 불순물을 떨어내듯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이 달라졌다. 이따금 불쑥 새로운 글귀가 떠오르면 재빠르게 수첩을 꺼내거나 휴대전화 녹음기능을 이용했다.
그해 늦봄, 어느 출판사에서 신인상 작품을 모집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운 좋게 여섯 편이 당선되었다. 그 일이 시 쓰는데 적절한 채찍과 동기부여를 했다.
두어 달이 지났을까. 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가을호에 실을 시 두 편을 보내 달라는 등단 작가에 대한 예우인 셈이다. 설렘 뒤에 은근히 걱정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글을 추려 서너 차례 퇴고를 마치고 전송했다.
이삼일 지난 뒤 출판사 대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목소리가 잔뜩 말라 있었다. 건성으로 인사를 건네더니 대뜸 물었다. “송 교장 선생님, 그 시에 나오는 조중동이 뭡니까?”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게 조선, 중앙, 동아일보입니까?” “네, 그런데요.” “교장 선생님도 ‘묻지 마 투표’하십니까?” 내가 되물었다. “아니 다짜고짜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보낸 시는 당시 8.15 광화문 집회를 연 태극기 부대 주최자의 행태에 관해 쓴 것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계속 이어졌다. ‘자기 출판사에서는 그런 시를 실을 수 없다. 시는 그런 것보다 사물의 아름다움을 담아야 한다. 시를 정치의 도구로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마구 쏟아 냈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실천하며, 단순한 지식을 넘어 올바른 삶의 가치를 추구하도록 안내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 것을 실천해보리라 다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시를 싣지 않을 이유를 확인하고 내 작품은 빼달라고 했다.
흔히 시를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한다. 간결한 언어를 활용하여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와 소통하는 수단이다.
요 며칠 새 ‘한강’이 범람하고 있다. 나도 오래전 꽂아두었던 그의 책을 꺼내 다시 펼쳤다. 그의 작품은 국가폭력에 가려진 개인과 사회의 아픔을 마주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풀어갔다. “우울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우리가 살아있는 한 실낱같은 희망은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인간의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훼손되었던 시간을 들여다보며 고통을 많이 느꼈다. 이 고통의 의미가 뭘까? 라는 생각 끝에 이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느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결국 글을 쓴다는 일은 고통에 힘겨워하는 어려운 이웃의 손을 잡아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행위가 아닐까.
오늘도 길가에는 깨진 유리병이 뒹굴고 있다. 누군가는 커다란 상처를 입어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럴 때 깨진 유리 조각을 치우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 유리 조각을 치우는 사람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사소하지만 누군가 꺼리는 일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아무도 치우지 않는 순간에 누군가는 허리를 숙여 깨진 병 조각을 치운다. 덕분에 길거리가 안전하다. 오늘도 무딘 펜촉으로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병 조각을 집어낼 재주는 없을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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