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한승진 황등중 교사 | | ⓒ 익산신문 |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사람이라는 노래 가사가 있다. 항복이라는 글자에 선 하나만 그으면 행복이 되는 신비가 있다. 이것은 말장난 같기도 하고, 말의 재미를 더하는 지혜인 거 같기도 한데 생각해 볼수록 의미가 있고 삶의 깊이를 더하는 것 같다.
조금만 생각을 바꿔 보면 커다란 일이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작은 일이 커다랗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게 보면 일이 큰지 작은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아닌지, 이런 외부적인 상황이나 환경이나 여건이 결정적인 게 아니다.
내 마음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것을 규정짓느냐,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는 거 같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더러 상담하면서 느끼는 게 있다.
아이들은 굉장히 괴롭다고 상담을 요청하는데 만나보면 ‘이게 상담 거리가 되나? 이건 별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별 것도 아닌 것에 너무나 힘들어 하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잘못된 생각을 조금만 고쳐 주면 쉽게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반에서 아이들이 다 자신을 언제나 싫어한다”고 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이건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 같았다.
그 학생은 “반 아이들이 자신을 다 싫어한다”고 했지만 잘 따져보니 다는 아니었고 언제나도 아니었다. 한 명 한 명 꼽아보니 서너명일 뿐이었고, 모든 시간이 아니라 몇 번 정도였다.
이 학생을 싫어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고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다. 그리고 그 학생을 싫어하는 시간보다 아닌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런데 이 학생은 자신을 싫어하는 몇 명의 학생들이 전부라고 여기고 싫어해서 자신의 마음이 상한 상황과 시간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하거나 최소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야한다는 생각은 지나친 욕심인지 모른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좋아할 때도 있고, 싫어할 때도 있다. 이것은 내게 문제가 아니라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잘하면 그것을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지만 시기와 질투의 마음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어떤 걸 안 하면 게으르다고, 불성실하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서 안쓰럽게 바라봐 주거나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문제는 내가 어떤 걸해서 혹은 안 해서가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데 나를 미워한다고, 나를 싫어한다고 의기소침해서 그것이 모든 것인 양, 모든 사람이 그런 것처럼, 언제나 그런 것처럼 확대해서 기죽어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학생에게 생각의 폭을 넓히도록 일깨워 주었다. 너를 싫어하는 그 몇 명이 네 삶의 기준이고 결정적 영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냐? 그 몇 명이 너보다 훨씬 똑똑하고 인간성이 좋은 사람들이냐? 그것을 증명할 수 있냐?
아니지. 너를 싫어하는 몇 명이 완전하지도 않고, 옳은 것도 아니다. 너를 싫어할 때도 있고, 안 싫어할 때도 있다. 이런 질문으로 스스로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생각을 하도록 일깨워 주었더니 스스로 문제를 조금씩 풀어가는 것을 본다.
어떤 학생은 매사에 자기중심성이 강하기에 이를 의식하도록 해주어 문제를 풀어가게 한 적도 있다.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겸손한 자세로 너그러움 마음으로 살도록 권면했다.
겸손은 정직보다 높은 것이다. 겸손은 잘났지만 자신을 내려놓거나 아니면 낮춤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해한다는 영어로 ‘understand’이다.
under라는 것은 ‘~아래’라는 뜻이고, stand는 ‘~에 서 있다’는 뜻이다. 즉 ‘~아래에 서 있다’는 말이다. 내가 높아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상대방보다 아래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방을 올려다 봐야한다. 이것이 이해한다는 말이다. 남을 이해하려면 스스로 낮아져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높여야한다. 내가 스스로 낮춰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높여주는 마음으로 배려, 존중, 희생 이런 것이 바로 ‘이해한다’이다.
이것은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자원해서 하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있다면 모든 사람을 허용할 수 있고, 넉넉히 너그러움으로 함께 할 수 있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이기적인 자기중심 때문이다.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에 이르는 길은 외부적인 환경이나 상황을 바꾸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데서 출발한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낮아지는 자세로 나보다 남을 높게 여기면서 살아보자. 그러면 사귐이 즐겁고 복되어 행복에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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